[키에] 적화 (2006)

적화 (赤花)
Written by 키에
Publication date : 2006.12.17 (초판) | 2009.01.18 (2판) | 2011.10.23 (3판)
Book spec: 1~2권 완결 + 소책자 | 342p / 347p / 소책자 45p | 국판
■Character  | 칼리안 페리튼(攻), 린(=사빈, 受)

사빈(=린)은 출생은 불분명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노예의 신분에 벙어리이다. 그러나 독특한 눈동자 색을 가진 묘한 분위기로 몹쓸 위험을 겪지만, 주인인 세이온 남작가의 막내 루시엔이 그를 잘 보호해줘서 험한 일은 겪지 않고 있었다. 원래 남작가를 잇기로 한 루시엔이었지만, 현 남작이 급사하는 바람에 급한 대로 장남에게 자리가 돌아가게 되어버리고, 늘 루시엔과 사빈을 못마땅해 하던 장남 막스는 그들을 노예로 팔아버린다.

그리고 노예 경매 날, 대 상회를 운영하는 페리튼 공작 가문의 차남 칼리안 페리튼은 입을 함부로 놀린 시종 노예 때문에 화가 나 있던 차에 말을 못하는 사빈을 경매에서 사들인다. 그리고 칼리안은 사빈에게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며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

나왔을 때 지인으로부터 [주인공이 좀 똘끼가 있어] 라는 추천을 받고 읽었었는데, 당시 흔히 볼 수 없었던 공 캐릭터 성격에 빠져들었던 작품. 연재만 보고 초판 예약을 놓쳤던 탓에 재판과 3판 때 구매. 제목과 어울리는 강렬한 붉은 색에 금박과 은박이 예쁜 표지의 책.

 

주인수인 사빈(=린)은 노예지만, 아름다운 눈동자와 묘한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날파리들이 자꾸 험하게 꼬이는 타입인데, 수가 뭘 한다기보다 타고난 운명이 적화(류즈나)라서 그런 듯. 쉽게 말하자면 도화살 같은 그런 것.

말은 못하지만, 글을 알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가능하고, 성격은 유약한 듯하지만 나름대로 고집이 있다.

 

주인공인 칼리안이 또 대표적인 츤데레&미인공 타입인데…. 자신의 미모와 재력을 충분히 잘 알고 이용하는 자기애(愛)가 아주 강한 캐릭터. 그래서 자신이 물건 정도로 취급하는 노예에게 연연하는 것에 혼란스러워하지만, 그마저도 대단한 자신의 감정이기에 함부로 치부하지 않고 금방 받아들인다. 여러 의미로 자신의 나르시즘을 잘 다루는 스타일.

초중반까지는 정말 엄청 츤츤거리지만, 후반에는 온몸에 꿀을 바른 듯 달달함이 넘쳐흐르는 사랑 꾼이 된다.

닭살 돋는 말도 거리낌 없이 잘하는데,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하는 점이 살짝 매력 있다.

 

내용은 줄거리처럼 말 못하는 벙어리 수가, 원래 주인과 함께 다른 지역에 노예로 팔려와 새로운 주인인 공을 만나 무한 애정을 받으며 팔자 피는 이야기로, 중간에 살짝 음모로 인한 사건이 있긴 하지만 아주 쉽게 해결이 된다. 

 

거북하다는 듯한 얼굴로 린이 망설이며 서있자 칼리안이 그의 표정을 알아챈 듯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 줄 테니 갈아입어라."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응접실을 가로지른 칼리안은 문을 닫고 나와 복도에 섰다. 
그리고 복도를 한 번 돌아보는데 문득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내가 나왔지?"

 

이기적이고 자기애로 똘똘 뭉친 칼리안은 다른 이들에게는 냉정하기 그지없지만, 린에게 만큼은 처음부터 이상하게 약해진다. 위처럼 자신도 이해 못 할 정도로 몸이 먼저 수그러들며 반응하니 고민하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잘해주게 되고, 울면 안절부절못하고. 처음 린을 데려오고 이전 주인의 낙인 위에 자신의 낙인을 찍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들어서 대륙 내 최고 보석 장인을 불러 화려한 맞춤 제작 팔찌로 낙인을 대신한다. 나중에는 흠 없이 지워주기까지.

거기다 옷이 필요한 거 같으면 다른 노예들처럼 대충 입히면 될 거를 굳이 또 최고의 의복 장인한테 가서 눈동자 색과 어울리는 옷감을 고르고 골라 종류별로 다 맞춰 입히고.

그러면서 린의 이전 주인인 루시엔 보다 자신이 더 마음 넓은 주인인 거라며 뿌듯해 하는데, 이미 주인의 영역을 벗어나는지도 모르고…. 이런 식으로 초반에는 관대한 주인이라 잘해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합리화시키다가 결국에는 좋아죽겠는 걸 못 참고, 어떤 경우에도 노예와는 접촉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공고한 룰을 모두 깨버리고 린을 품게 된다. 이 과정들이 참 재미있다.

 

결국, 제 마음을 인정하고 난 뒤에는 온갖 사탕발림과 수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서 안달 나서는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행동들을 하는데 초반에 워낙 냉정하고 도도했던 캐릭터라 낯설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잘 어울리게 그려져서 칼리안의 캐릭터가 무척 귀여웠다.

린과 루시엔의 가족같이 끈끈한 관계에 끝없이 질투하는 것도 웃기고. 덕분에 루시엔까지 데려와서는 린에게는 관대한 척, 린이 안보 이는 데서는 동화 속 계모처럼 루시엔을 좀 치사하게 괴롭히는데, 몇 년의 괴롭힘 덕에 루시엔이 청초함을 던지고 떡대로 자라버린 것도 웃겼다.

 

"누가 이렇게 예쁘게 키운 거냐? 대체 누가 키운 거야?"
계속해서 얼굴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리는 칼리안의 말에 사빈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다시 칼리안의 입을 막았다.

 

칼리안이 예뻐죽겠다는 말을 무지하게 해대며 말 그대로 [어머님이 누구니?] 스타일의 물빨핥까지 할 때는…. 어우 얘 뭐니…. 하면서도 웃으며 보게 된달까.

주인수인 린은 뭐 말도 못하니 새로운 주인이 미친놈인 건가? 하며 어리둥절 휩쓸리는 식이고, 칼리안 혼자 첫눈에 반해서 고뇌하고, 안절부절+어화둥둥 하는 식의 서술이 주된 것이라 사실 수의 매력은 많이 약하다.

그냥 유약하고 주인공 눈에는 한없이 예뻐 보이는 설정이라 내 기준 주인공 원맨쇼 보는 재미로 보는 작품·하지만 주인수가 말을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선에 답답함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은 꽤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글을 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부터 린이 칼리안의 손이나 등에 글로 의사 표현이나 고백을 하는 장면들도 꽤 간질거리고. 나중에는 칼리안이 린과 결혼하겠다고 법까지 바꾸려고 할 만큼 둘의 연애질이 엄청나게 유난스러워지는 것도 꽤 즐거운 부분들이다. 역시 할리킹 클리셰는 질리지가 않음.

그리고 주인수의 가족 같은 전 주인이었던 루시엔과 칼리안의 형이 서브 커플로 등장하는데, 이 둘은 막판이 진심 반전이긴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으억??? 이게뭐야?? 이랬는데, 몇 번 보고 최근에 봤을 때는 역 키잡이 좋긴 좋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됨.

내 기준, 악역인 듯 악역이 아니었던 레이와 페리엘도 둘 사이의 설정 자체는 취향이라 스핀오프 있으면 재밌겠다 싶다.

작품의 설정이나 배경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가님 다른 작품 [은의 인], [사화] 등과 세계관이 이어져서, 중간중간 칼리안의 상회가 거래를 하게 되는 모도나 대륙의 신성종족 내용이나 꽃에 대한 내용 등 까메오처럼 나오는 부분들이 있다.

가독성이 좋아 가볍게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소설로, 도도한 미인공이 팔불출이 되는 과정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적화 책은 초판 때 약간의 문제로 사과용 소책자가 추가 배포되었었는데, 이후에도 요청이 많아서 2판, 3판 때도 소책자가 항상 같이 나오게 되었다. 이유는…. 본편과는 상관없는 45페이지짜리 현대물 단편인데 재미있음.

제목은 [Final Distance]. 서로 속마음을 숨긴 채 몸만 취하는 관계로 지내던 대학 동기 둘의 삽질 내용으로 키에님 특유의 현대물 분위기가 뙇 하고 응집되어있다. 짝사랑수와 계략공. 취향 저격으로 뒷이야기를 더 보고 싶은 단편.

 

너뿐이다.
내가 이렇게 약한 건, 너뿐이야. 
네가 내 유일한 약점이라고

 

"진짜 미치겠군..."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칼리안은 한탄 했다. 대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아니, 진짜 좋게 말해서.. 진짜 아주 좋게 표현해서....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린에게 첫눈에 반한 거라면.... 그래서 충동적으로 녀석을 산 거라면...

"죽어야지...노예 따위에게 반하다니 죽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