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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보름을 조심하라
Written by 스탠 Stan
Publication date : 2006.01.22 (초판) | 2009.02.22 (2판) | 2013.06.22 (3판) | 2016.12.29 (4판)
Book spec: 1권 완결 | 330p | 신국판
■Character  | 김낙원 (30세,攻), 박목화 (31세,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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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정부의 [특별조직범죄단속 기간] 당시, 모종의 사건으로 거대 조직 중 하나인 '동양 PK'의 행동대장 [박 목화]가 검거되었다. 동양의 보스인 미친 소 박광우의 뿔이라고 지칭 될 만큼 주요인물이었던 덕에 경찰은 그의 검거와 더불어 조직을 일망타진하려 했으나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 조직을 와해 시키지 못한 채, 박 목화만이 3년 6개월의 실형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3년 후, 기업형 조직으로서 승승장구하는 '동양 PK'와 그 조직의 보스 박광우 때문에 경찰 내부는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3년 전 자신의 앞에 피 흘린 채 쓰러져있던 박 목화를 구한 장본인이자 그의 검거에 공헌했던 김낙원 경정은, 박 목화의 가석방 소식과 함께 당연히 본거지로 돌아가야 했을 그가 조직에 돌아가긴커녕, 한적하게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에 의심과 호기심을 갖고 그를 찾아가게 된다.


내용의 배경은 대강 이렇고, 도입부는 살짝 심오하긴 하지만 이야기는 꽤 조용하게 흘러간다.

 

주인수 박목화. 출소와 함께 10년간의 조직생활을 접고, 뜬금없이 터미널 상가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한다.

건장하고 과묵한 상남자 타입으로 누가 봐도 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이지만 나무와 꽃, 목화(木花)라는 이름처럼 성실한 성정을 보다 보면 의외로 꽃집과 꽤 어울린다.

 

남자들에겐 남자답고 강한 '형님'으로, 여자들에겐 어딘가 말하지 않아도 의지가 되는 '남자'로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은근하게 인기가 높은 특유의 매력으로 주변에 사람이 꼬이는 타입이다.

 

주인공 김낙원. 사시 패스 후, 검찰에 들어가지 않고 경찰 특채를 하여 상당히 젊은 나이에 경정을 달았다. 

좋은 집안과 좋은 학교, 좋은 직업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빌딩의 세만 받아도 넘칠 만큼의 재력까지 있다. 여성에게 호감이 높은 소위 기생 오라비 과 외모까지 겸비하여 삶에 있어 좋은 조건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성격은 이름의 락(樂)처럼 즐거움을 추구한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즐기는 성향이다 보니 자신과 반대로 성실하고 정의롭고 어딘가 꽉 막힌 구석이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을 갖지만, 그런 이들이 성실하게 살다가 절망에 빠지는 모습 즉, [맨홀에 빠진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다]는 식의 아주 못된 구석이 있는 캐릭터.

 

조폭 수와 경찰 공의 조합이란 것은 흥미롭긴 하지만, 극과 극인 캐릭터 성격에 둘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가 않아서 초반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박 목화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과묵하고 과묵해서 정말 전체 대화 중에 제대로 말을 좀 하는 부분은 손에 꼽을 정도. 처음 읽었을 때는 얘가 수 맞지?? 음?? 하는 의심을 해가며 보기도 했을정도.

그런데도 이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김낙원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애가 어딘가 얄밉고, 중간에는 조금 귀엽다가 후반에는 찌질하고 애잔한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있는데, 김낙원의 이런 뚜렷한 변화들 때문에 점점 몰입해서 읽게 된다.

거기다 별 대사도 없이 김낙원의 시선 등으로 묘사되는 박 목화의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김낙원처럼 괜히 얘한테 안달하게 되기도 하고. 

 

자신 앞에 쓰러졌던 박 목화를 길바닥에서 교도소까지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다는 김낙원은 가석방되어도 조직으로 돌아가지 않고 꽃집 따위를 하고 있다는 박 목화의 소식에 [조직에 배신당해 찔린 주제에 의리라니, 복수를 해야 제맛 아닌가] 하는 본인만의 해석으로 분명 전 보스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의심과 기대를 하며 그를 찾아간다.

 

보호관찰 중이라 저항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도발하다 못해 의욕이 넘쳐 박 목화를 강제로 능욕하는 것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서열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의도라서 없어서 안 될 부분이기도 하다.

김낙원이 그렇게 강하게 나와도 꿈쩍 않는 박목화가 진짜 독한 듯. 

 

그런 목화에게 오기가 생긴 김낙원이 그 이후로 거의 매일 외근을 핑계로 꽃집에 발 도장을 찍지만, 시간이 흘러도 복수는커녕 조용조용 꽃이나 포장하는 박 목화를 보면서 그의 신경을 끌며 자신도 모르게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한다.

자기 밥시간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매일 호화찬란한 음식을 사다 나르며 같이 식사하는 건 물론, 목화가 맛있어하면 뿌듯해 하는 등, 슬금슬금 변화를 보인다.

 

늘 목석 같던 박목화가 장미에 안개꽃 조합이 제일 잘 나간다며 웃는 모습을 보고 멍해진 장면은, 김낙원이 제대로 넘어간 부분이 아닐까 생각함. 나도 이 부분은 목화 귀여워~. 하게 된 부분이라…

거기다 묵묵하게 꽃 자르고 긴장해서 꽃 포장하는 모습들은 박 목화에게 빠져드는 포인트.

 

그리고 목화가 조직에 돌아가지 않고 꽃집을 하게 되는 데 도와준 자원봉사자이자 누님인 김정애를 보고 겨우 네 까짓게? 하며 째려보며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김낙원의 모습에선 투기 가득한 첩실 같은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3년 만에 목화를 찾아온 똘마니들을 보고 전 조직원들과 접선하는 거로 의심하고 지켜보는데, 알고 보니 정말 순수하게 형님 도와주는 그냥 바보들이라는 거에 김빠져 하던 김낙원에게 똘마니들이 [형님이 원래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는 말에 심보가 꼬인 것도 웃기다.

 

[경찰 양반도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게 인기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여자가 없던 적은 없지만.]
김낙원이 별 표정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저 놈처럼 헤펐던 적은 없다.]

 

목화가 인기가 많다는 것에 이런 식으로 날을 세우는 김낙원을 보면 얘 진짜 뭐야 ㅋㅋㅋ하게 됨.

이렇게 김낙원의 깨알 같은 감정이 흘러나오는 부분들이 내용의 흐름 중간에 자연스럽게 잘 스며있어서 읽다 보면 상당히 즐겁다.

 

박 목화는 의리 때문이라기보다 배신과 상처의 두려움 때문에 조직에 돌아가지 않고 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김낙원은 박 목화의 이런 약한 모습을 깨닫게 되고, 점점 더 그에게 집착한다.

 

그렇게 점점 친해지고 잘 지내다 박 목화와 보스 간의 신의를 확인하게 된 김낙원이 또 질투에 눈이 멀어 [내가 먹을 것도 사주고 일도 도와주는데 고맙다고도 안 하고 왜 널 기다리는지도 모르겠고 짜증 나]하는 식으로 혼자 열을 내다가 2차 능욕을 하게 되고, 기껏 친해져서 마음 열었던 목화는 다시 벽을 세운다. 

 

결국, 처음과 다르게 상당히 많이 후회하는 김낙원. 이때부터 어딘가 찌질한게 귀여워지기 시작함.

잔뜩 상처 입혀놓고 많이 아팠냐면서 목화 손에 입 맞추는 장면은 병 주고 약 주고 같지만 애틋해서 좋다.

거기에 또 금방 벽을 허무는 박 목화는 진짜 애가 겉만 단단하지 속은 말랑하기 짝이 없다.

 

위험에 빠진 박목화가 죽은 줄로만 안 김낙원이 폭주하고 사무치게 후회하는 장면은 상당히 카타르시스가 있다.

자신이 경찰인 것도 잊고, 앞뒤 안 보고 목화 하나만 생각하고 그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절절하게 외치는 김낙원.

징계 심사를 받으면서도 목화의 생사만 생각하느라 식음 전폐한 김낙원.

 

초반의 여유만만하고 기고만장했던 모습과 이 후반의 모습이 극명한데, 이런 김낙원을 향해 친구가 지나가듯 건넨 말인

[언제는 맨홀에 빠진 사람들 구경하는 게 좋다고 하더니, 어떻게 너야말로 꼭 그렇게 빠진 사람 같으냐.] 라는 대사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싶을 정도의 촌철살인이었다.

 

[찔린 놈한테 또 찔리는 바보도 있냐? 네 배에 흔적을 쌍으로 아로새기니 좋든?]

화가났다. 놈은 살아났다. 그런 만큼 억울하고 또 화가났다.

[왜 반항 한번 안 해보고 끌려가냐? 넌 김정애가 네 목숨보다 중요하냐 나는, 나는 그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기나 하냐?]

 

여기 점순이가 있네…?! 하며 유쾌하게 느껴진 장면.

목화가 무사한 것에 정말 안심하면서도 그저 묵묵히 위험을 당한 것에 화를 내며 목화를 닦달하는 김낙원과 그걸 그대로 또 말없이 듣는 박 목화를 보다보면 동백꽃이 떠오른다.

나름 적극적으로 구는데 몰라주는 상대 때문에 삐딱해지는 점순이처럼, 심술이 잔뜩 묻어나는 김낙원 덕분에 즐겁다.

 

새침+찌질거리면서도 열렬하게 다가가는 김낙원과 어리둥절하며 묵묵히 다 받아주는 박 목화.

과묵한 떡대수가 절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지금도 박목화가 내가 좋아하는 수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있다는 것은 작가님의 필력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취향을 부수어 버리니까.

 

작가님 요약처럼 꽃집 조폭 능욕물로, 전 조폭 행동대장이었던 금욕적인 꽃집 주인과 삐딱한 비리경찰 간부 사이의 사랑(?) 이야기다. 본편 [3월의 보름을 조심하라]는 셰익스피어의 글귀로, 예언가가 시저에게 했다는 이야기라 [배신]의 의미가 담겨있다. 주제나 내용 또한 이러한 의미가 강해서 두 사람이 연애하고 꽁냥 거리거나 에로 한 것 부분은 거의 없다.

그저 야매 경찰이 꽃집 주인 괴롭히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쌓여가는 감정선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고, 작가님의 담백한 문장과 묘사에 빠져드는 작품이다.

 

이 단단하고 강한 놈은 약했다.
호의에, 도움에, 친절에,
그리고 아주 작은 정(情)따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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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꽃 좋아했냐?]
[아니.]
[왜, 너 이름이 목화잖아.]

시덥잖은 농담에 놈이 쿡,하고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다시 그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낙원은 자기도 모르게 놈을 바라보다, 놈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싶어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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