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코코넛 @whitecoconut
T: / 문화생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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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쯤 전부터 물건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특히 가장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책을 많이 비우려고 하고 있다.

일반 서적은 A라딘과 네네 등 중고 서점에 보내는 식으로 하고 있는데 만화, 소설 등은 학창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덕질의 산물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한번 더 들춰보게 되고, 막상 처분하려다가도 아쉬워서 하루 이틀 미루거나 하다 보니 더디게 진행 중.

 

아무래도 아이가 있다 보니 나의 사고도 예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혼자일 때는 그저 내 것을 사 모으며  만족하는 식의 소유욕이라 단순했는데,

가족 구성원이 생기면서는 일단 손에는 쥐고 있고 싶지만 양이나 부피가 많다 싶으면 부담스러워진다.

 

이래서 부모님들이 그렇게 뭐 사는 거 말리고 자꾸 버리려고 하고 그러셨나 보다.

내 집이 번잡한 게 불편해지는 것. 각각의 방이 다 적당히 채워져 있으면 좋겠고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만 손에 쥐고 되도록 티 나지 않게 적은 느낌이 되길 바라는 모순적인 소유욕으로 변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손에 잡히는 물건을 좋아했고 풍성하고 꽉꽉 찬 것을 추구했었기에 내 사고의 변화가 스스로도 당혹스럽긴 하지만 사람이 획일적일 수는 없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욕심의 형태가 환경에 따라 바뀐 상황에서 현대 사회의 기술 발전과 편리함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많은 것들을 전자화시키고 심플하게. 즉, 미니멀리즘이 보편화된 사회다 보니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소유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 참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정리 중인 것들.

만화책은 중고 서점에선 낱권으로만 받아줘서 중고 마켓으로 일괄 정리. 짝꿍이 D마켓을 참 유용하게 사용 중이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열심히 덕질했던 원나블 중에 나루토나 블리치는 예전에 처분했고 그나마 남겼던 원피스도 미련 없이 보냄. 

어렸을 때, 처음 단행본이 나오던 순간부터 계속 신간 나올 때마다 서점 가서 꼬박꼬박 샀었고 짝꿍과 연애시절에서 결혼 후까지 함께 계속 열심히 사모았는데... 솔직히 정상 전쟁 이후로는 거의 의무적이긴 했다. 뒷 내용들 이제 잘 생각도 안 난다. 가장 최근 권은 비닐도 안 뜯음.

은혼도 마찬가지.  마냥 웃겨서 유쾌한 마음으로 모았었는데 역시 흐린 눈을 하는데도 한계가 왔다. 여러 좋지 않은  부정적인 이슈들이 겹칠 때마다 애정도 뚝뚝 떨어지고 더 이상 내용과 사상을 분리시켜 볼 수 없게 되어 미련 없이 처분할 수 있었다. 이쪽도 뒷권 대부분은 비닐 밀봉 상태 그대로. 다른 책들도 책장에 자리를 비우기 위해 열심히 골라내고 있는데 이제 몇몇 애장판인 만화들만 소장할 듯.

성인이 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십수 년을 함께 해온 동인 소설들은 소장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이 변함에 따라 전자책으로 만들어 꾸준히 그 수를 줄이고 있다.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 책들은 중고 판매도 했지만 손에 꼽을 정도고, 팔기는 아깝고 손에는 쥐고 있고 싶은 내게는 이렇게 개인 소장용 전자책으로 만드는 게 타협할 수 있는 최대였다. 하지만 역시 책을 파기할 때마다 내 일부가 같이 썰려나가는 기분이다.

권수가 많다 보니 엑셀로 얼마나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체크하고 있는데, 다 하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다.

전부 처리하면 좋겠지만 약간 남은 욕심 때문에 소장본 일부만 남기려는 중인데 이걸 선택하는 것도 영 쉽지 않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비워지는 걸 보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오랜 취미기에 아쉽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