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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라임나무
Publication date : 2017.04.10
Book spec: 1~2권 완결 | 390p/391p | 국판
■Character  | 강준일 (攻), 한녹영 (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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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나쁘지만 예쁜 외모로 유명한 배우 한녹영은 2019년의 어느 날, 재벌 3세와의 동영상 유출과 황산 테러로 인해 연예인으로서 재기 불능 상태가 된다. 짝사랑 상대이자 연인이라고 믿었던 소속사 대표는 가장 먼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리고, 그동안의 악행으로 주변에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병원에 유일하게 찾아온 사람은 자신과의 영상 유출로 가장 피해를 본 대 기업 후계자 강준일 뿐. 극심한 자괴감에 괴로워하던 한녹영은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되고, 죽어가던 중 꿈처럼 돌아가신 어머니를 마주한다. 

그리고 눈을 뜬 한녹영 앞에 있는 것은 떠난 줄 알았던 매니저와 황산에 녹지 않은 멀쩡한 자신의 얼굴이었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자신이 죽기 3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녹영은 새로운 삶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일을 바꾸기로 하는데.. 


라임나무님의 올해 신간으로 뒤 늦게 봉인 해제. 두께가 상당하지만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은 책으로 표지도 예쁘다.

주인 수 한녹영은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힘들게 자랐다. 그때 자신을 캐스팅하고 도와준 소속사 대표에게 빠져 그가 원하는 일은 다 하는 충견 같은 존재였으나, 회귀 후에는 그 마음을 잘라낸다. 연기력보다 예쁜 외모로 유명하지만 못된 성격이었고 현재는 자신의 이전 일들을 반성하고 노력하며 점점 평판이 좋아지고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나 180도 달라진 모습이지만, 원래 성격이 강해서 독한 구석이 있다.

 

주인공 강준일. LK 사의 후계자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물론 회사의 굵직한 일들에 관여하느라 몹시 바쁜 인물. 성실하고 담백하지만, 동성 취향을 갖고 있어 각종 유혹에 시달린다. 한울 기획사 대표 장현재를 통해 스폰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한녹영을 매몰찬 독설로 쫓아낸 적이 있다. 우연히 다시 만난 달라진 모습의 한녹영에게 점점 관심을 기울인다. 

 

예쁜 외모의 연예인 수, 잘생긴 재벌 공 설정은 진부할 수 있으나, 회귀라는 소재와 운명으로 맞물린다는 설정이 괜찮았다.

중간에 가끔 이전 삶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그게 현재 삶에는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식으로 한녹영이 뭔가 바꾸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결과는 달라진다 하는 예상 가능한 흐름으로 진행되고 한녹영의 시점이라 연예계 활동 이야기가 꽤 많지만, 그동안 발전하는 강준일과의 연애 과정이 즐겁다.

"내 앞에서 그 딴 식으로 막말을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대놓고 취향이 아니라니." 

이 정도를 막말이라고 생각하다니. 역시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다르네. 본인은 나한테 더한 막말을 해 놓고. 
남창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지 않았나. 저야말로 그런 막말은 처음이었다. 데뷔 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힘들게 살 때도 남창이라는 표현은 못 들어 봤다. 

"그럼 이제 나한테 반하겠네요." 

 

한녹영이 강준일에게 스폰 받을 목적으로 들이댔다가 까인 후 시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둘은 약간 오해가 있는 상태인데, 동네 헬스장을 시작으로 둘은 우연히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진다. 강준일은 한녹영이 목적을 포기 못 하고 일부러 찾아온다고 생각하고, 한녹영은 관심 없는데 오해 사니까 답답해하고.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던 한녹영에게 엄청난 막말을 했던 강준일은, 재회 후 솔직해진 한녹영에게 너도 내 취향 아니라는 말을 듣고는 불쾌해 하면서도 호감을 느끼는 류의 로코 분위기가 좋았다.

강준일이 한녹영을 찬 이유도 남의 인형 즉, 한녹영이 소속사 대표에게 충실한 게 불쾌해서였기 때문이라서 한녹영이 홀로서기를 하자 관심을 드러내는 것. 회귀 전에도 묘하게 감정이 있던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고 

 

은근히 질투와 독점욕이 있는 강준일은 한녹영에 대한 호감을 인정한 순간부터 빠르게 들이대고 상당한 사랑꾼이 되는 것이나 한녹영 외모만큼은 강준일의 엄청난 취향이었다는 것도 뻔해서 좋았던 부분들.

한녹영이 회귀 후 연기력까지 늘어 재능이 폭발한 대스타가 되면서 자기보다 바쁘다고 얼굴 보기 힘들다며 툴툴거리는 강준일도 귀여웠다. 

 

살짝 수줍은 표정으로 턱을 긁고 있을 때 강준일이 한녹영 쪽으로 몸을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장래에 침대에서 뒤엉킬지도 모르는 사이잖아. 그것도 아주 뜨겁게." 

한녹영을 놀리는 강준일의 입매에 또 웃음이 흘렀다. 한녹영은 얼굴을 붉혔다. 
괜히 심장이 술렁거렸다. 민망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녹영이 이전 생에서 강준일과 관계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신경 쓰는 걸 알게 된 강준일이 앞으로 그렇게 될 사이냐고 놀리는 것도 즐거운 포인트. 그렇게 밀당하다 베드 인을 하는데, 이전 사건은 조금 과격했으나 안정을 취하듯 이어지는 이 첫 베드 씬 자체는 꽤 마음에 들었다. 텐션도 괜찮았고. 

강준일이 너무 절륜해서 한녹영이 엄청 힘들어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한 번에 안 끝내는 강준일도 그렇지만 그거 다 맞추는 한녹영도 대단하다고 느낌.. 처음이 어렵지 이후에는 같이 있거나 눈만 맞으면 난리도 아니라서 좀 웃기긴 했다. 

연애 시작 후 붙은 파파라치 때문에 한녹영이 가발 쓰고 만나러 나가는 건 유난이다 싶었지만, 거기에 더해진 몇몇 요소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에로에 충실한 짧은 외전이 있으면..하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특히 ㅅ타킹...)

 

전체 이야기 설정 자체는 무거운 편인데 흐름이 단순하고 시원하게 흘러가서 읽기 편했다. 인과관계 변화 외엔 특별히 큰 사건도 없고. 있을 뻔하다가도 한녹영이 알아서 잘하거나 조금 힘들면 강준일이 나서서 깔끔하게 정리되는 식. 

기획사 대표도 한녹영이 칼같이 마음 접으니까 살짝 후회 남 루트를 타는데 끝까지 비호감으로 남지, 막판엔 나름 자기도 순정이 있던 척 구는 게 더 싫었다. 그래서 막판에 강준일이 한녹영에게 마지막 일 말 안하고 그냥 덮어버린 게 무척 마음에 들었음. 괜히 동정 같은 감정 섞였으면 삼류 신파가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 수가 모른 채로 계속 질려 하도록 하는 마무리라 좋았음.

 

그리고 강준일의 조부와 한녹영의 조모가 안면 있는 사이라던가 한녹영 엄마가 강준일에겐 은인이라던가.. 하는 건 조금 무리한 설정 같았지만, 초반에 나온 회귀 이유처럼 나름 얽힌 인연을 풀어내는 설명이라 어쩔 수 없었다 싶음.

다만, 한녹영이 반성했다지만 현재는 그에 반해 너무 과하게 복 받은 게 아닌가 싶기는 했다. 현재의 행동들도 죄책감에서 시작한 것이라서 반성한 것 보다 더한 행복을 누리는 것 같아 조금 쓴웃음이 나왔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받기 힘들 복을 전생에 업을 지고 받다니.. 하는 마음. 커플이 된 후 너무 닭살이라 살짝 비뚤어진 감상이 드는지도. 

 

주인공수의 얽힌 인연이 새롭게 풀리는 것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회귀 전에 나온 둘 관계성이 설정이 조금 더 취향이었다. 

남의 충견이라고 벌레 보듯 대하던 강준일이 술 마시고 한녹영과 억지로 관계하고 영상 찍히고.. 그러다 영상이 퍼지며 난리 나고. 그런 와중에 테러 당해 입원한 한녹영을 찾아간 강준일이 오히려 전과 달리 따뜻하게 봤다는 몇 문장만으로도 너무 솔깃했음..

죽어서 회귀 하지 말고 그런 바닥 같은 관계에서 시작해 불타올랐으면 얼마나 흥미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물론 현재만큼 달콤하진 못했겠지만, 어떤 형태의 과정이었어도 강준일은 사랑꾼이 되었을 것 같아서 이 쪽 루트도 궁금해지긴 했다.^^;

 

아무튼, 전 생에서 죽음으로 죗값을 치른 수는 다시 주어진 시간에 잘못을 바로 잡고 남은 악당들까지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이야기로, 화자인 주인수가 이전 삶에서 저지른 일들이 꽤 악랄해서 살짝 불호가 생길 수 있다. 

그래도 현재는 멋진 사랑꾼 공과 예쁘고 사랑스러운 수의 달달한 연애물로 즐겁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작가님 글 중에 씬이 가장 마음에 든 작품.

 

이번에는 제대로 살아볼게요. 다르게 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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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나 때문에 허가해준 거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해놓고 막상 진짜로 저 때문에 허가해줬다고 하자 '대체 왜?'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한녹영을 내려다보며 강준일이 짧게 웃었다.

"상이야. 홀로서기를 시작한 인형이 기특해서."

02
"그.. 방심한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 것 좀 안 하면 안돼요?"

―왜?

"심장에 무리 와요."

강준일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전엔 머리가 어지럽다더니 드디어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한 모양이야? 나한텐 좋은 일인 걸.

그의 웃음소리가 참 시원하게 들려서 한녹영은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댄 채 그의 웃음이 잦아들길 조용히 기다렸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중략..)

"근데 왜 자꾸 연애하쟤요?"

―아직 본격적으로 연애하자고 한 적은 없는데. 이제 곧 덤벼들 거라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