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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
Written by 모스카레토
E-Book Info : 2016. 12.02 | 비하인드 출판
■Character | 차르 (攻), 김 윤 (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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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 #도박물 #미인공 #미인수 #포커천재공 #피아니스트수 #손으로하는건다잘하는공 #소리를잘캐치하는수  

 

도박판에서 화투 선수를 '타짜'라고 칭한다면, 포커 선수는 '마귀'라고 부른다. 

김윤은 팔자에도 없는 '마귀' 중 한 사람을 찾으려 며칠째 하우스를 전전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마귀'라는 은어는 이놈 때문에 지어진 거라는 평을 받는, 실로 귀신 같은 솜씨의 포커 선수이자 강북 하우스장인 '차르'라는 거물을. 덤덤히 제 손에 쥔 카드패를 바라보고 있는데, 레이스 타임비를 걷으러 온 빨간 후드티의 '재떨이'가 불쑥 말을 걸었다. 뜬금없는 접근에 일단 고개를 들었는데…, 

그런데 재떨이가 이런 얼굴이었던가? 아니다. 어제도 그제도 봤던 재떨이는 분명 빨간 후드티를 입은 껄렁한 인상이긴 했지만, 이 남자는 아니었다. 삼백안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강렬한 인상의 그는 언제 빼갔는지 만 원짜리 한 장을 팔랑이며 속삭였다. 너 그렇게 카드 치다간 골로 간다고. 김윤은 컴컴한 백열등 아래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가….

출처 - 리디북스


-안녀엉, 여러분. 제가 바로 차르예요.

주인공 차르. 필리핀에서 자라 그곳의 하우스를 섭렵하고 한국에 들어와 강북 오야가 된 음지 도박계의 신성. 출생 때문에 정말 본명이 없다. 그때그때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한국에 와서 러시아 꾼들을 잡으면서 그들의 말에 따라 차르(황제)로 불림. 어떤 이유로 팔도의 사투리를 섞어 쓰는 데, 이 이상한 말투가 아주 잘 어울린다. 

처음엔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고 점점 츤데레 같은 매력을 보이다가 종국에는 뭐 이런 다정남이 다있나 싶은 캐릭터. 

도박꾼에서 사랑꾼이 되는데, 내 기준 은근하게 느껴지는 귀여움에 치이는 바람에 차르가 쓰는 사투리마저 참 좋았다.

 

-제가 말 안 했죠? 차르 씨 많이 좋아한다고

주인수 김윤. 보육원의 후원인인 음대 교수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집 양아들로 들어가지만, 교수가 원하는 것은 음악적 재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었을 뿐, 새어머니와 이복형제들에게 말도 못할 괴롭힘을 당한다. 그도 모자라 집안의 빚 대신 음지 도박판에 팔리고..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학대에 익숙해져 있어, 얌전하다 못해 일반적이지 못할 정도로 잘 참음. 이게 답답하기보다 안쓰럽다. 

피아니스트로서 음악적 재능이 매우 뛰어나고, 특히 듣는 것에 민감한데, 그 때문에 차르의 스테키[각주:1]를 집어내는 바람에 그의 관심을 사고, 사랑도 받고. 처음엔 무심한 느낌을 주지만, 점점 사랑스러움이 피어난다.

 

작가님 작품 중엔 신입사원이 가장 취향이었는데, 이 작품도 만만치 않게 좋았다.

왠지 쫄깃한 음지 도박판의 긴장감 넘치는 내용이 나올 것처럼 전문 용어들과 계획들이 잔뜩 깔려 나오지만, 초반부만 그렇고 이후의 흐름은 너무나도 소소하고 달큼한 연애가 중심이라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주인공수가 매우 귀여워서 다 상관없어졌음.

 

은근한 매력을 보여주는 주인공 차르는 오랜만에 신선하게 느껴진 캐릭터라서 좋았다. 

일단 투박한 사투리부터. 이게 뭔가 싶다가도 점점 그 말투에 적응되다 못해 정체불명의 사투리가 매우 귀엽게 느껴진다. 

과거 형제들의 괴롭힘으로 생긴 윤의 트라우마를 함께 극복해주려고 노력하고, 그도 모자라 김윤 본인조차 모르는 상처나 나중에 갑자기 나올 수 있는 감정까지 생각하며 자제하는 차르의 모습이 좋았다. 내가 다정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데 차르 식의 다정함은 매우 치였음. 

꾼 답게 고백도 카드나 화투가 의미하는 숫자 들이대며 하는 것도 귀여웠고ㅋㅋ 츤데레라기보다 좀 부끄럼쟁이 같았다.

 

김윤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착각이 [나 좋아하나?] 하는 괜한 의심으로 이어지며 점점 김윤을 과하게 신경 쓰던 차르가 먼저 애정을 깨닫는 그런 과정이나 차르만의 스타일로 잘해주는 것도 즐거웠음. 박스 채로 하는 현금 계산 너무 유쾌함 ㅋㅋ 

 

자신의 계획 때문에 이용하기 위해 수를 곁에 둔 만큼, 무조건 어화둥둥 하지는 않지만 갈수록 윤을 아끼게 되면서 처음 계획보다 좀 덜하게 이용하려 하고 나중엔 그냥 빼버리는 등, 점점 약한 모습을 보이더니 종국엔 김윤 손에 뭐 하나 묻히기 싫어하게 되는 그런 게 흐뭇했고.

 

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후엔 어디 성스러운 것을 건드린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자기 때문에 수가 빛나는 곳으로 못 돌아갈 것 같다며 심각해지는 거나, 손을 다친 윤이 피아노 못치게 될 까봐 전전긍긍하고 무슨 목숨을 빚진 사람처럼 아주 난리도 아닌데, 이게 과하다면 과하지만 어떻게든 김윤을 다시 빛나게 해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차르의 행동과 그 묘사들이 정말 좋았다.

 

따지고 보면 과거나 현재나 차르야 말로 김윤만큼, 어찌 보면 그보다 더 암울했다는 생각인데. 이름도 없지, 돌봐주는 사람 없는 이국 땅에서 그저 먹고 살아남기 위해 별짓 다했지... 그렇게 기를 쓰고 죽음보다 더하게 살아왔는데, 김윤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에게 뭐든 다해주기 위해 본인 인생이나 다름 없는 도박판을 깔끔하게 버린다는 게 대단했다.

 

국적도 없이 서류상 유령이나 다름없음에도 어떻게든 김윤과 살아가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찾아 임대업 같은 걸로 열심히 부를 키우는데 금전적 머리는 정말 비상한 듯. 그걸 다 김윤 이름으로 하는데, 본인 없이 윤이 혼자 나중에라도 잘살 수 있게, 언젠가 윤이의 마음이 변한다면 아무 말 없이 놓아주고 기다리겠다는 것까지. 대체 얘 뭐야..... 하는 감탄을 했음.

김윤의 몸이든 마음이든 치유해 주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하고 공부하겠다는 걸 보며 아니 본인도 그 고생하고 커 놓고 어쩜 저러나 싶었고.

가만보면 차르는 본인이 굉장히 냉정한 줄아는데 임자를 못만나서 그랬지, 사랑 때문에 패가망신하기 쉬운 남자 같았음. 심하게 퍼주더라. 김윤이 착해서 망정이지..

처음 보여준 차르 캐릭터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갭이 느껴지는 세기의 사랑꾼 같은 모습인데도,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 자체가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윤 역시 학대받고 자랐음에도 애가 너무 착해가지고..ㅠㅠ 자신에게 유일하게 순수한 감정을 준 차르에게 올인하는 것 자체가 짠했다. 

정말 무슨 알에서 나온 새끼마냥.. 차르가 세상 전부인 양 구는 게 좋으면서도 이유를 아니까 안쓰럽고.

차르의 말이라면 의심도 안 하고 뭐든 다 해줘야지 하는 게, 자라온 환경의 영향으로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 보이고 비정상적인 면도 좀 느껴지지만, 차르나 김윤이나 어딘가 평범하지 못한 애들끼리 만나서 그런 면을 완벽하게 맞춰주는 느낌이라 좋았다. 

차르 말대로 이 둘은 너무 완벽한 패 같은 조합으로 커플 케미가 그만큼 잘 그려졌다는 생각이 들었음.

 

조연들도 개성적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봉 마담과 조뺑이가 좋았음. 조뺑이 왜이리 웃겼지 난 ㅋㅋㅋ 얘는 그냥 나올 때마다 유쾌했음.  

박사장은 과거 모습 나올 때는 좀 카리스마 있어 보였는데 현재에선 너무 찌질해서 아쉬웠다. 

김윤네 양부모나 그 형제들은 어찌 보면 김빠진 사이다 같지만, 차르가 교수님 오래오래 사시라고 그 말 한마디는 꽤 컸다. 

살아도 죽은 것보다 못할 거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사 같았음. 뭐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감정적으론 좀 덜 시원하긴 했다. 

 

음지 도박판이 배경인데다 초반 에피들보면 좀 큰 판을 기대하게 되고, 차르의 오랜 계획이나 그런 요소 때문에 사건 스케일이 클 것 같지만, 차르와 김윤이 이어지고 난 후 부턴 그냥 소소하게 진행되며 사랑꾼들 다운 행보만 보여준다. 

그나마 있는 일의 해결마저도 너무 사랑 중심이라 뭔가 큰 걸 기대한다면 살짝 아쉬울 수 있을 듯. 

모든 것이 그냥 주인공수 연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이 도박판 소재는 둘의 만남과 사랑의 계기 같은 느낌이었다.  

 

사건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흐름도 신선하니 괜찮았다. 사랑 때문에 오래 준비한 계획과 마음에 변화를 주는 차르의 모습들이 좋았고.

내 기준, 차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가장 재미있는 요소였는데, 공에게서 매력을 못 느끼면 이 이야기 자체가 밋밋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수 캐릭터의 매력도 공을 통해 느껴지기 때문에 이야기의 호불호는 주인공이 얼마나 취향에 맞느냐에 갈릴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차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재미있었음.

 

아무튼, 차르가 김윤과 행복해지기 위해 호적을 어찌할 지 궁금해지는 마무리라 법적으로도 문제 없는 상태에서 정말 평범한 연애를 하는 차르와 김윤이 보고 싶다.  

지금 우리가…. 꼭 로티플 같단 말야
이런 패는 있다는 걸 알아도 쓰면 안 되는 건데.
아, 그러니까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내가 이런 평범한 연애를 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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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되게… 잘하시네요.”
“어.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다, 내가.”

차르가 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씩 웃었다.

“그래서 너랑 내랑 꽤 괜찮다는 거 아이가. 내는 손으로 하는 거 다 잘하고, 니는 소리 다 잡을 수 있고.”

 

 


  1. 카드를 섞는 과정에서 원하는 패를 원하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