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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다
Written by 꽃낙엽
Publication date : 2016.12
Book spec: 1~2권 완결 | 432p/430p | 국판
■Character  | 연선율 (攻), 문보름 (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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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이민으로 혼자 남은 엄마 친구 아들 연선율이 문보름의 집에 하숙하게 된다.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문보름과 연선율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누구나 좋아하고 인기 많은 학생회장 연선율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유독 문보름에게만 까칠하게 대한다. 

그런 연선율의 행동이 점점 신경 쓰이는 문보름은 왜 나만 싫어하냐며 연선율에게 투정부리게 되고, 사실은 그에게 자신이 특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호감을 감추지 않고 자신을 특별하게 대하는 연선율에게 마음이 녹은 문보름은 다정한 연선율에게 끌리고, 둘은 결국 친구 이상의 선을 넘게 된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둘만의 세계에 거침없이 빠져들었던 불장난이 사랑이 될 무렵, 갑자기 연선율은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연선율에게 크게 상처받은 문보름은 이를 계기로 밝았던 성격이 차갑게 변해버린다. 

그리고 십수 년 후, 회사의 합병과 함께 같은 회사에서 팀장과 직원으로 재회하게 되는데..


추천을 받았는데 마침 소장본 예약 중이라 사 본 작품. 일단 주인공수 이름이 참 예쁘다. 

제목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는데 시작 始作과 시작 詩作. 이야기는 이런 제목에 참 충실하다. 

 

학창시절 함께 지내던 주인공수가 서른 무렵 재회하는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과거 회상에 나오는 고교시절 감정선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인 연선율은 말주변이 없어서 그나마 행동으로 보이는 편인데, 정말 솔직한 감정을 담은 마음은 시를 통해 에둘러 드러낸다. 시를 쓸 정성으로 그냥 [다녀오겠다 기다려라 좋아한다] 등의 말만 했어도 얘네가 십여 년을 빙빙 돌았을까 싶어서 살짝 답답함.

뭐 연선율 본인 말마따나 고등학생 때는 무작정 기다리라기엔 무책임할 수도 있는 나이니까 나름의 고민이 이해가긴 하는데.. 그래도 너무 훌러덩 떠나서.. 개인적으로 얘 성격은 그나마 솔직한 연팀장일 때가 좀 더 마음에 들었다. 학생회장도 나름 귀엽긴 했지만. 

 

주인수 문보름은 애가 충분히 상처받고 그 이유도 이해가 가지만, 너무 자기만 혼자 당했다는 식으로 날을 세우는 면이 좀 있다. 고교 시절엔 그래도 발랄하고 상큼했던 애가 히스테릭하게 변한 게 좀 안타까웠음. 오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해도 과거와 너무 갭이 커서 가끔 당황스럽긴 했다. 이후에 원래 성격으로 천천히 돌아오긴 해서 그나마 다행. 얘는 고교 시절이 확실히 더 좋긴 하다.

 

재회 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배경에선 초반에 상사인 공이 수를 야근 등으로 무리하게 고생시키는 건 좀 당황스러웠는데..

이렇게 초반에 회사에서는 서로 존댓말로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반말하고 그런 요소들은 좋았다.

 

"애인입니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상관 이십니까, 연 팀장님이." 

"상관이 있죠.―그 남자와 어떤 관계냐에 따라 앞으로 문 대리의 퇴근 시간이 달라질 테니까."

 

정말 만날 시간이 없어서 애인과 헤어진 문보름은 연선율이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싫어해서 저런다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문보름이 다른 사람 만나는 거 보고 일부러 시간 없게 하려고 연선율이 일부러 그런거라는 식으로 공의 행동이 좀 유치한 구석이 있다. 

고교시절에도 아주 어릴 때 만난 거 수가 기억 못 했다고 꽁해있던 것도 그렇고. 과거나 현재나 서로 대화가 몹시 부족한 애들이라 삽질을 엄청나게 한다. 

 

이야기 속 삽질들이야 적당히 봐줄 정도였고 과거에 대해 어느 정도 오해도 적당히 풀어가고 서로가 다시 가까워지는 분위기라 괜찮았는데 문제는 잘 마무리되나보다 싶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연선율의 사내 유부남 소문. 

그 소문을 덜컥 믿은 문보름이 혼자 불륜 망상을 하며 삽질할 땐 책을 덮을까 살짝 고민했다. 지갑 속 사진이라니 너무 뻔하잖아 휴.. 서른이나 먹어서 그걸 왜 못 물어봐?! 하는 짜증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선율은 정말 말을 제대로 했음 좋겠다...는 생각도 매우 강하게 들었음. 소문이 도는 걸 알고 나름 이용한다고 방패 삼은 것도 알겠는데.. 적어도 문보름한텐 설명을 하라고.. ㅠㅠ

 

연선율이 문보름과 다시 잘 해보기 위해 제 나름의 노력을 충분히 잘 하다가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둔탱이처럼 구는 바람에 강제로 고구마를 먹은 기분. 그렇게까지 땅 파지 않을 수 있는 문제를 너무 꼬아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굉장한 인내를 필요로 했다. 

충분히 돌고 돌았는데, 다시 잘 이어지고 몽글거리면 딱 맞겠다 싶을 때 쓸데없이 또 옆으로 새서 재밌던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을 받아서 이 부분은 그냥 스킵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말없이 떠나며 애 성격 바뀌게 이런저런 계기를 주고, 재회 후에도 말은 너무 안 하고 주변 얼쩡거리면서 자꾸 찔러대는 연선율은 확실히 잘못했기에 문보름이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이해 가서 도도하게 구는 게 꽤 마음에 들었지만,저런 오해로 또 꼬이는 건 오버같았다. 

때문에 중반부터는 헤어짐을 고하며 회사 관두고 칩거한 문보름 보겠다고 그 먼 길을 오가며 애쓰는 연선율이 좀 안쓰러웠음. 오해가 풀리고도 왔다갔다하다니..

어린 시절 불장난이야 문보름도 같이했는데 연선율에게만 책임 전가하기도 좀 그렇고, 말 안 하고 미국 간 거 하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고생해?? 같은 느낌.

 

따지고 보면 문보름네 부모님들이야말로 정말 능구렁이가 따로 없음. 문보름이 변한 게 연선율 탓이긴 해도 2할 정도는 부모도 책임이... 

둘 사이에 뭐 있는 거 눈치챈 건 그렇다 쳐도 아들이 그렇게 마음고생 하고 상처로 변하는데 연선율 미국에 간 이유를 그 오랜 시간 동안 언질 한 번 안하다니 말이다. 친구아들인데 중간에 소식이고 뭐고 일절 안했다는 거 보고 헛웃음 ㅎㅎ..... 

아무렇지 않은 척 어머 너 몰랐니? 이런 식으로 말해주는 거 정말 별로였음. 이 정도면 엄마와 대판 싸우지 않을까 휴... 그래놓고 둘이 잘 되고 나니 나름 고민한 척, 티는 내지 말라며 은근 인정한 척하는데 좀 많이 짜증.......

연선율네 엄마나 할머니는 너무 쿨해서 황당했고..뭐 소설은 이런 재미에 본다지만 문보름네 부모에겐 도통 공감을 못 하겠다.

 

아무튼, 이외에 전체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구성이나 감정선은 꽤 좋았다. 비록 한계치에 아슬아슬한 고구마 삽질들이 산재해있긴 해도 못참을 정돈 아니었고. 

둘이 이어지기까지 참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연애 후부터는 꿀 폭탄이라서 답답했던 만큼 시원하다.

동상이몽처럼 굴어도 속궁합만큼은 기가 막혀서 어떤 상황이든 잘 붙는 애들이라 답답해 질 때마다 해갈 시켜주듯이 나오는 정성 어린 씬들 덕에 쏠쏠했다. 지루해지지 않게 적당히 맞춰주는 느낌이었음. 

어릴 때는 물론, 현재에서도 오해 풀기 전부터도 상당했는데 제대로 연인이 되고 나서는 정말 씬이 폭발하는 구나 싶었다. 

그 간의 한을 푸는 것처럼 심하게 꽁냥이는 연애를 하느라 공과 사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눈만 맞으면 회사든 어디든 난리도 아니다. 물론 난 이런 거 좋아해서 흡족했지만 과한 면도 있는게, 탕비실은 그 난리 쳤는데 정말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는 경악을 하긴했음ㅋㅋㅋ

내 기준 전체적인 것은 고교 시절 텐션이 더 좋았고, 현재에선 탕비실이나 외전의 교복 플레이 장면 같은 요소들이 마음에 들었다.

 

근데 연선율이 문보름에게 빠진 계기가 혼혈이라 눈 색깔이 다른데 문보름이 달처럼 예쁘다고 해준 거에 꽂혀서 아주 인생을 걸었다는 게.. 

고교 때도 아닌 8살, 그 어린 시절부터 쌓은 순정으로 나이 서른 넘도록 수 하나 바라보느라 동정남이라는 점은 굉장히 쇼킹한 설정이었음. 그도 모자라 타고난 테크니션이라니....

뭐든 퍼주는 사랑꾼 모드는 기본 옵션인 데다 수 한테만 상시 발정하는 등등 연선율은 여러모로 유니콘 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말도 안 돼! 싶지만 난 정말 이런 무리한 설정들이 참 좋았다. 소설 보는 맛이 나서..◕‿◕

 

30대 남자 둘이 연애하는데 현재도 학창시절만큼 유치하고 애들처럼 행동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간의 한을 푸나보다 생각하면 편하다. 어릴 때는 곧잘 부르던 이름도 재회 후에는 연팀장, 문대리 해가면서 존칭 쓰고 막 선 긋던 애들이 마음 통하고 나서는 다시 보름아~ 선율아~ 이러는 거 은근 귀여웠고.  

특히 문보름이 어리광쟁이 느낌으로 돌아온 느낌이지만, 애인 앞에서 애긔애긔하게 구는 건 연애 하면 그럴 법하지.. 하며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음. 이름 때문인지, 문보름 캐릭터는 어딘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라서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그냥 가끔 아, 맞다 얘 지금 나이가 서른 넘었지?! 이렇게 깨닫는 정도. 그냥 얘도 공만큼 유니콘 과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연선율이 자꾸 시 지어 보내는 건 뻘하게 웃기긴 했다. 시는 적당히 좀 쓰고 그냥 말로 해줬으면 하는 기분... 문보름 이름 때문인지 맨날 달 타령이나 하구. 툭하면 플라이투더문 부르고.

더 웃긴 건 연선율이 감정적으로 중요한 말은 참 못하는데, 스킨십할 때의 야한 말은 정말 너무너무 잘하니까 정말 헛웃음이 날 때가 있다.

과거나 현재나 애가 정작 필요한 말은 빙빙 돌리고 시로 표현하고 맹하게 구는데, 보름이 한테 야한 말 할 때는 아주 청산유수가 따로 없음. 대체 혼자 뭐 하고 지냈는지 심히 궁금해졌다. 거기다 표현도 잘 못 하면서 질투만큼은 착실하게 해대는 것도 참....

 

아무튼, 개인적으로 내가 못 참은 건 불륜 오해 에피 정도였고 전체적으로는 꽤 재미있고 살짝 찡하고 달달했다.

삽질이 많긴 해도 씬이든 뭐든 적당히 해갈해주면서 이어가니까 나쁘지 않았음. 외전 분량도 꽤 많은데 사내연애하는 것과 고교시절 연선율 시점의 에피, 교복플 같은 외전들이 있다. 소소한 요소에서 호불호가 나올 수 있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분위기가 괜찮다. 과거 말 한마디 표현 하나를 못해서 참 오래도록 돌고 돌았던 첫 사랑끼리 결국은 이어지는 이야기로, 달달하고 뜨끈한 삽질물이 보고싶을 때 좋은 이야기.☻

 

그래서 싫었어.
그래서 너랑 친구하기 싫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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