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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 문화생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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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1

루시아

Written by 하늘가리기
Reading : 2016.10.28-10.30

 

■ Character | 비비안 헤세(루시아) & 휴고 타란

선왕의 많은 사생아 중 하나로 왕궁 구석에서 존재감 없이 살던 16번째 공주 비비안(루시아). 어느 날, 꿈을 통해 자신의 비극적인 미래를 경험하고,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왕궁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꿈을 토대로 전쟁 영웅이자 젊은 권력자인 타란 공작을 찾아가 계약 결혼을 제의하며 진행되는 내용인데 절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스포주의*

로판 입문작으로 구매했는데 분량이 많아 망설였던 것이 무색했을 만큼 술술 읽혀서 확실히 가독성이 뛰어나다고 느낀 작품. 처음 읽었을 때는 큰 재미를 못 느꼈는데 재독을 반복할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여주 루시아의 매력을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주를 좋아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주입하듯 나오는 것 같아 강요받는 느낌에 여주 캐릭터에게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사정이 짠하긴 했지만, 갑자기  등장한 남주의 혈육을 첫 만남부터 너무 애정을 쏟는다는 게 납득이 어려웠다.

 

두 번째 읽었을 때부터는 머릿속 납득 세포가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 것인지 여주의 행동이나 이유에 대해 공감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재독을 반복하니 여주 캐릭터가 새로운 시각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서야 여주인 루시아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데도 주변 인물들이 말하는 모든 매력을 다 알 수가 없었다는 건 아쉬운 점.

 

확실한 것은 남주에게만큼은 루시아가 몹시 사랑스러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렇게 남주를 향한 사랑이 넘치는 데다 예쁘고 착하고 다정한데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개연성이 없는 것이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흑 사자라는 별칭의 전쟁 영웅에 권력과 외모까지.. 멋진 설정은 다 가진 남주 휴고 타란. 

초반 여성 편력이 엿보이는 몇몇 장면들 때문에 처음 읽었을 때는 썩 마음에 차지가 않았다. 남주 집안 특성이 광기가 좀 있어서 잔인함이나 성욕이 높다는 설정은 알겠지만, 주변 여캐와의 씬이 나오므로 호불호는 확실할 듯.

혼외자로 알려진 아들까지 있는데 가문의 문제로 조카를 거둔 것이었다는 점은 다행이었으나 여주를 만나고 나서야 아이와 가까워지는 등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은 성에 차지 않았다. 집안 문제라 해도 데미안을 너무 방치한 느낌. 

 

그래도 재독을 반복하면서 쌍둥이 형제와의 일을 곱씹다 보니 동정심이 생기기 시작해서 여주와 만나기 이전의 다소 가벼웠던 부분들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여자들과 심하게 얽히지 않지만 가문 내력 때문에 닳고 닳은 경험의 남주가 순하고 여리고 처녀인 여주는 자기 취향 아니라는 둥 한심한 생각을 하더니 여주와 살짝 닿은 것만으로 눈 돌아가선 살면서 이런 적 처음이라는 식으로 구는 게 고릿적 느낌이긴 하다. 

여주에게 빠지는 기폭제가 초야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 때문에 한없이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이런 계기가 취향을 타는 부분이겠지만 이런 클리셰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 또한 그럭저럭 괜찮았다. 

 

과거에 만난 여인들의 일방적인 질척임이 있지만 남주는 여주와 만난 이후로는 꽤 조신하고 여주에게만 집착과 발정을 하는 타입이라 다른 것들은 흐린 눈으로 지나쳤다. 여주도 알아서 잘 넘기고, 남주가 여주 눈치를 보며 절절매는 요소이기도 해서 설정상 괜찮았음.

남주가 계약으로 결혼해놓고 계약 조건 자체를 잊은 채 여주에게 홀딱 빠져서 계약 내용에 제 발목을 잡히니까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이 좀 웃겼다. 너무 빠른 후회 아닌가 싶은데 특히 장미꽃으로 전전긍긍하는 건 귀여웠다.

 

남주가 스스로 미친 것 같다고 할 만큼 여주와 붙어 있기만 하면 안달하고 물고 빨고 난리다. 권마다 꾸준하고 열심히 19를 하는데 씬에서 특히 남주가 여주를 보며 정말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느낌. 귀엽다 예쁘다 이런 말도 잘하는 편이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내가 많이 유해진 모양인지 휴고가 점점 루시아에게 빠져들다 못해 미쳐 난리인 게 만족스러워서 나름 품을 수 있었음. 여주를 향해 깊어지는 애정을 통해 점점 사랑꾼으로 변해가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남주가 초반의 까칠함이 무색하게 금방 제 마음을 인정하고 바로 후회하고 구애 모드로 바뀌기 때문에 초반에 밀당하는고 썸타는 재미가 몰려있고 이후에는 서로 좋아 죽는 감정을 비롯한 19씬의 비중이 많은 느낌. 

 

그리고 각각의 이유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비밀이 있고 둘 다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해서 오해가 생기는데, 이런 갈등 요소는 여주가 아이를 갖고 더 깊은 사랑과 책임감을 느낀 남주가 가문의 비밀을 고백하는 흐름으로 풀려서 보기 좋았다.

꿈에서 보았던 상황들이나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조연들의 등장도 빈번하기 때문에 굵직한 사건을 기대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양에 비해선 단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후반부는 그냥 달달한 일상을 보는 재미 정도.

 

외전에서 나오는 꿈속의 인생 후반 내용이 흥미로웠다. 힘들었던 삶에서도 루시아와 휴고가 만난다는 뻔한 운명론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 좋아해서 마음에 들었음. 그리고 이런 류의 피폐 루트도 꽤 취향이라 이런 이야기로 나왔어도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개로, 아무리 인생 2회차라지만 루시아가 본편에선 스무 살도 안 된 나이라는 점은 매번 적응이 잘 안 되는 부분. 한참 어린애한테 휴고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한 번씩 짚어보게 되는 건 몇 번을 읽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한번 읽었을 때의 느낌과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의 감상이 꽤 달라졌기 때문에 재독을 할수록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