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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류드 (Prelude)
Written by 키에
Publication date : 2012.10.28
Book spec: 1권 완결 | 270p | 국판
■Character  | 한도현 (31세, 攻), 이수현 (31세,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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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에서 믿고 있던 선배가 투자금을 횡령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새 직장을 찾고 있는 이수현. 

그러던 중, 친구 애인의 소개로 괜찮은 조건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리고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창이자 악연인 한도현을 십여 년만에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그와 얽혀서 좋은 기억이 없는 데다, 마지막으로 봤던 십년 전만큼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 때문에, 이수현은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하지만 제시받은 조건이 너무 좋고 현실적으로 당장 백수 생활을 할 수는 없어서 참고 출근하기로 한다.

학창시절 무섭게 남은 기억과 달리, 현재의 한도현은 매너좋고 여유로운 남자가 되어 이수현에게 계속 친근하게 굴며 과거의 일을 사과하고 이수현에 대한 오랜 마음을 고백하며 거침없이 다가온다. 그렇게 옛날과 다른 모습의 한도현에게 수현의 마음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그러다 술김에 한도현과 하룻밤을 보내며 얼떨결에 사귀는 사이가 된 수현은 점점 더 도현에게 빠져들지만, 십 년 전의 연인이자 충격을 안겨 준 상대인 지원의 등장으로 한도현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된다

최근 너무 (내 기준) 다정한 공들만 봤더니 어쩐지 허전해서 이럴 때는 미친놈을 봐야겠다 싶은 기분에 꺼내 든 프렐류드. 

멀쩡한 줄 알았더니 미친 자이더라.. 혹은 정신 차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더 미쳤더라 하는 게 생각날 때 보면 괜찮은 작품.

 

주인수 이수현은 좋은 말로 안전 제일 주의이고, 나쁜 말로는 회피형 타입.  

유능한 시스템 보안 전문가로 일 때문에 가족들만 이민을 가고 혼자 한국에 남아있는데, 이게 실수였는 듯.. 

아무튼, 과거 사건 이후, 충격 때문에 조심스러운 성격이 더 심해졌고 무성애자 수준의 성향을 보여 연애는 수월하지 않다. 

외모는 평범한데 몸이 예뻐서 은근히 인기가 많다고 함. 알콜 약간만 들어가도 기절할 만큼 술에 내성이 없다. 

이 것 또한 문제였던 듯...ಠ_ಠ...

 

주인공 한도현은 감정 절제를 못 하는, 아니 안 하는 타입. 

학창시절에는 여러 반병신 만들고도 반성은 커녕 그러고 싶어 그랬을 뿐 왜 나쁜지 모르겠다 하는 데다 돈과 빽까지 있다보니 광폭한 성질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친 후 해외에 있다가 십 년 만에 이수현이 보고싶다는 이유로 무작정 돌아옴. 

나름 사회성을 길러 성격을 감추는 것에 능숙해졌으나 그 안의 어두운 본성은 그대로. 

 

십여 년을 짝사랑하던 상대와 사귀게 된 후, 얼마 가지 않아 제 연인의 배신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이수현은, 이후 오랜 친구를 제외 한 사람들과는 일정 선을 유지하고 문제가 복잡해지기 전에 정리하는 식으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회피한다.

한도현은 학창시절부터 이수현에게 오랜 시간 집착을 해왔고, 수현이 모르는 곳에서 교묘하게 수현의 주변인만 조지는 방법을 썼던 인물로, 수현에게 사귀는 사람이 생기자 참지 못하고 대형 사고를 치며 처음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전까지는 마주치는 시선만이 불편했을 뿐 자신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한도현에 대해 오히려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생각으로 피했던 이수현. 

 

이직한 회사에서 십 년 만에 재회 후, 어린 시절의 광포하고 이상한 성격은 어디가고 사람좋은 얼굴로 다가오는 한도현을 보며 슬그머니 오해도 풀리고 마음도 말랑해지는 이수현이지만, 그러면서도 내내 애매한 태도만을 보인다.우유부단하기도 하고. 

 아무튼, 본인도 옛날부터 어찌되었든 한도현에게 자극적인 감정을 느껴서, 그를 과도하게 의식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 틈을 알아보고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한도현에게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만 할 뿐, 어영부영 몸부터 홀라당 넘어가고, 만날 때마다 계속 관계를 맺는 등, 담백했던 설정이 무색하게 한도현과의 관계에서는 쾌락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모습이 좀 싱겁기도 하고 이해가 안가기도 하고.

 

너무 어리고 미숙해서 제 성질을 다 보여준 거죠. 지금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티 나는 짓은 안 할 테니까요.
적당히 가려야죠. 저도 사회성이라는 게 어떤 건지 배웠으니까요.

 

한도현이 이수현에게 잘못을 고하며 사실은 널 좋아해서 그랬다고 매달리는 모습들을 보면 자칫 응? 후회 공인가? 하고 속을 수도 있다. 

과거를 후회하긴 하는데, 일반적인 개념의 후회가 아니라 그냥, 어릴 때는 내가 좀 더 치밀하지 못했다고 하는 자신의 미숙함에 대한 후회일 뿐. 

결론적으로는 후회는 개뿔. .(ʘ‿ʘ) 이 부분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개새와 미친놈들은 차라리 후회를 안하는게 가볍게 보기 좋다는 취향이라 개인적으로는 이런 면이 좋았다. 

후회하지 말고 그냥 미친 짓을 해주렴. 하는? 사실 말만 나쁜 놈일 뿐, 이야기 속 내내 너무너무 꿀 떨어지는 사랑꾼 모습이라 딱히 나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하지만, 후반에 이수현 전 애인의 등장으로, 잘 참으며 어떻게든 조심스레 이수현을 잘 꾀어내고 있던 한도현이 살짝 핀이 나가는 짓을 하며 더 이상 본성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쏠쏠하다. 

점점 꺼려하는 수현에게도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싫다면 할 수 없지.. 라고 하는데, [할 수 없으니 포기하겠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래도 저래도 할 수 없는 거면 그냥 내키는 대로 하겠다] 하는 그런 거.

 

학창시절부터 이어진 집착이라 쉽게 놓아주진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딴에는 사람 좋은 시늉이라도 하며 이수현의 마음을 녹이려 애쓰는 노력이 가상했는데도 본성을 들키고야 만 한도현이 좀 아까웠다. 그 시한폭탄 같은 분위기가 좋았는데.

딱히 이수현 캐릭터도 안쓰럽거나 괜찮은 부분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 팽팽한 위화감을 유지한 채 둘이 아무렇지 않은 듯 사귀는 것도 나름 볼만하겠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수현도 참 제 발에 제가 넘어진 꼴 같기도 한 게,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고 적당히 사귀었더라면 대접 잘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놈의 의심병이 사달을 낸 거랄까. 그럼 좀 교묘하게 발을 빼야지. 면전에 대놓고 [너 좀 또라이 같아서 못 사귀겠다] 하면 누가 네 알겠습니다. 이러나? 보통 사람도 짜증 날 텐데. 하물며 진짜 미친놈인데 오죽할까. 아무튼 얘도 이상한 곳에서 백치같이 굴어서 정은 안 갔음.

거기다 막장 꼴을 당한 와중에도 쾌락에 또 못 이겨 하는 걸 보면, 이수현도 정상은 아니구나 싶은 느낌도 든다.

 

아무튼, 다 개판 난 거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는 체념으로 수현에게마저 본성을 드러낸 한도현. 멀쩡한 껍데기와 달리 광포하고 시커먼 속내를 보이는 정석적인 광공물 같은 흐름이 뻔하지만 볼만하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후반까지 조용히 흐르다가 얌전하게 깔려있던 기피 키워드들이 막판에 폭발하는데, 폭력과 강제 뭐뭐는 싫다 하면 피하는 게 좋다. 취향이 확실히 갈릴 수 있음.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이야기 속에서 한도현이 미친 짓 제대로 보여준 건 결국 막판뿐이잖아... 하는 생각에 몹시 아쉬웠다.

주인공이 본성 드러내며 제대로 미친놈 짓 시작한다 싶을 때 끝난다는 점이 이 소설의 단점 아닌 단점이라고 생각함.(。ŏ_ŏ)..

 

작가님 말대로 주인공에게만 완벽한 해피 엔딩이고, 주인수에게는 완벽한 멘붕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제목의 뜻 Prelude(전주곡)에 너무 충실해서 본편(?)이 나와도 좋겠다 싶은 이야기.

 

―...넌, 진짜 미쳤어.
―상관없어, 난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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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말했잖아. 아주 예전부터 널 좋아했다고. 네 첫사랑은 내가 아니지만 내 첫사랑은 너였어.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한 것도 너뿐이야. 너도 나한테 끌리고 있다는 건 인정하잖아?

02
"네가 원하는 모습이 이런 거 아니었어?"

이상한 말이었다. 그건, 진짜 너무 이상한 말이었다. 순간 드는 묘한 위화감에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도현이 다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눈을 응시해 온다.

"성실하고 착하고 유쾌하고. 넌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잖아. 그런데도 무서워?"
"...무슨 소리야?"
"난 너한테 잘해주고 싶어. 수현아. 그래서 최선을 다했어. 그런데도 무섭다면...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하지?"

(중략)
"결국, 어떻게 해도 마찬가지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