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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순조롭다
Written by 우주토깽
Publication date : 2013.03.31
Book spec: 1~2권 완결 | 384p / 474p| 국판
■Character  | 이우희 (攻), 김수영 (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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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기를 먹고 살아야 하는 란 족. 인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뒤늦게 란으로 각성하게 된 김수영은 의뢰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사람의 손가락을 통해 소소하게 곤을 취하는 착한 반요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의뢰를 해결하고 귀가하는 길에 납치를 당한 김수영은, 요괴인 자신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 이우희에게 잡혀 감금 당한다. 정체불명의 인간 이우희는, 예전에 자신의 것을 갈취한 김수영을 추적해 온 것으로, 김수영에게 그 죗값을 치를 것을 종용하며 자신의 의뢰를 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김수영은 발들이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예감에 이우희의 제안을 거절하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이우희는 란 족에게 최상의 먹이인 [청곤] 을 가진 자로,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접촉을 시도하려는 란족들이 그에게 다가올 수 없도록 하는 것과 어떤 물건을 찾는 것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 의뢰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이우희에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김수영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제안을 수락한다.


-어쩌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전혀 안 드는걸. 정말로, 전 이우희 대표님이 탐나지 않습니다

주인수 김수영은 요괴인 란족으로 의뢰를 해결해주는 일을 하며 대가의 일부로 곤을 받지만, 인간 부모에게서 태어나 뒤늦게 란으로 각성했기에 거의 인간이나 다름없다. 동족에 관한 상식은 무지한 편. 각성 후 같은 란족인 삼촌을 통해 배운 지식이 고작이다. 반요라도 인간보다는 힘이 세고 강하며 신체능력이 매우 좋다.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 매끈하게 잘생긴 외모의 훈남이지만, 자신의 특성으로 인해 연애나 결혼에 대한 꿈을 접은 지 오래. 평화롭게 여행이나 다니며 소소하게 사는 것이 꿈인 바른 청년. 욕을 잘 못 함. 술에 취하면 말이 짧아진다. 요괴보다 더 요괴같은 남자에게 잡혀 고생 중.

 

-당분간은 얌전히 내 카나리아 노릇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주인공 이우희. 인간이 분명하지만 어쩐지 인간 뿐 아니라 란 족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미술품에 조예가 깊어 보이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음. 전용기나 수중에 부리는 뛰어난 부하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돈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보통 인간인데도 란 족 서넛이 공격해오는 것쯤은 가볍게 물리칠 만큼 강하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거나 소유한 것을 누군가 건드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음. 총을 잘 다루며 뭐든 찾는 것을 가장 잘한다. 우아한 외모에 정중한 말투지만 수틀리면 돌변하고 음담패설을 잘함. 청곤인 자신을 탐내지 않는 란 족이라는 이유로 김수영을 곁에두고 이용하려고 한다.


수호자와 미필고를 통해 우토님의 작품이 점점 취향으로 느껴질 무렵, 쐐기를 박은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공수 캐릭터 모두 마음에 들어서 좋아한다. 내용은 줄거리처럼, 란 족은 인간의 정기(=곤)을 먹지만, 사실 인간에게 별 필요 없는 것 또한 곤이라서 보통 사람들은 란족에 대해 모르고 란족 또한 인간과 잘 섞여 살고 있다. 그러나 몇 백년에 나올까 말까 한, 전설이나 다름없는 천상의 정기 [청곤]을 가진 인간 이우희의 존재로 인해 란 족은 물론 김수영의 인생이 꼬여버리는 이야기.

 

“김수영 씨도 나 노립니까?" 

그렇게 묻고 있는 눈빛이 언뜻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김수영의 목을 비틀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안 노립니다.” 

절대로, 라고 덧붙이는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이우희의 입대가 풀린다.

 

최상의 먹이 청곤에 대한 탐욕으로 이우희를 차지하려는 란족과, 다른 란족이 취하지 못하도록 아예 청곤을 없애려는 란족. 양 세력에게 늘 공격받는 삶을 사는 이우희는 자신이 그들에게 최상의 먹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그냥 란족을 다 없애버려야 편하겠다 싶었는지 그들을 이용하고, 없애려한다.

란족이지만 이 치열한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소소하게 살아온 김수영은 유럽 한번 가보려고 무리한 의뢰를 받아들였다가 이우희의 눈에 띄어버리고 만 것.

과정이야 어쨌든 의뢰를 수락한 후에도 이우희에게는 위협당하고 동족에게는 배신자 취급당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는 김수영이 제법 안쓰러우면서 기특하다.

 

종이 남친 해야될 것 같은 훈남이랄까,  김수영은 강하기도 강하고, 위험하고 무리한 임무에도 살짝 고민만 할 뿐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담백함이 매력이다. 이우희야 뭐 처음 등장부터 납치에 협박에, 그 잔인성을 보면 뭐 이런녀석이?! 싶고.

이우희가 초중반까지 김수영을 카나리아 운운하며 무슨 미끼 취급, 애완동물 취급할 때는 너무하다 싶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나오는 집착 어린 행동들에 점점 즐거워진다.

 

손가락 정도로는 취할 수도 없는 거대한 정기를 가진 이우희는 어차피 김수영에겐 그림의 떡 같은 존재. 

그래서 김수영은 허기가 찾아오면 이우희가 제공하는 일반 부하들, 일명 도시락(;) 1,2,3 의 손가락을 통해 정기를 취하는데, 초반에는 무덤덤하던 이우희가 다른 이의 손을 무는 김수영과 싫어하다가도 막상 물리면 얼굴이 풀리는 부하들을 보며 점점 기분 나빠하는 모습들이 클리셰적이지만 좋다. 더 화내고 얼른 폭발하길 부추기고 싶어짐. (º∼º)

 

허기를 채우기 위해 김수영이 손가락을 잠깐 무는 그 장면들이 묘하게 야릇한 것이나, 이우희는 청곤이기 때문에 손가락이 아닌 직접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바람직한 설정이었다. 

거기다 청곤을 가진 이우희의 영향으로 허기짐의 고통 주기가 짧아진 김수영에게 그냥 자기 것을 주겠다며 억지로 먹이려 집요하게 굴며 입에서 시작한 것이 천천히 영역을 넓히며 끝까지가는 것도 순서를 착실히 밟는 분위기라서 즐거웠음. 후반에야 몰아치긴 하지만.

최상의 먹이라도 이우희만큼은 절대 싫다고 거부하는 김수영이 참고 참다가 극에 달할 때 넘어가는 것도 좋고, 개인적으로는 역시 컨테이너 장면과 수영장 장면이 참 좋았다. 

 

안되는 이유
"손가락만 고집하는 이유가 뭡니까." 
"편하고, 뭐 제일 나으니까. 입술은 좀...." 
"입술은?"
이우희가 김수영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야하잖아. 분위기가 이상해진다고." 
아무래도 입술로 받아먹은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적이 있었나요. 하고 묻는 이우희의 목소리가 유독 차다. 
"한 번."
...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했다. 이우희가 김수영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고개를 젖히게 만들었다.
"왜."
김수영이 눈을 끔뻑거리며 묻는다. 
"입 벌려." 
"싫다니까." 
"분위기가 야해져서?"
김수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우희가 웃는다. 

(중략) 

"김수영 씨 말 대로군요." 
"...뭐가." 
이우희의 손끝이 김수영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아까 물어뜯은 상처는 이미 아물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분위기가 매우 야해졌어요." 
이우희의 목소리가 내려앉는 것을 마지막으로 김수영은 눈을 감았다.
 
또, 입으로 곤을 취하지 않는 이야길 하다 이어지는 이 장면의 분위기가 좋았음. 취해서 반말하는 김수영이나, 그 솔직함에 울컥하는 이우희나.
의뢰만 다 해결하면 김수영을 놓아주겠다고 했던 이우희가 하나 둘 계획을 끝내며 다시 평온해질 생각을 하는 김수영을 보며 시커먼 기분에 점점 사로잡혀 거칠어지는 것도 확실히 취향이었다.

대우 잘해줄 테니 일 끝나도 자기 밑에서 일하라는 둥 좋게 회유해봐도 안 먹히고, 어지간한 일은 마음에 담지 않고 그냥 잊어버리면 된다는 마인드의 김수영을 보며 '널 매일 가둬두고 xx 하면 날 쉽게 못잊겠지' 하는 어두운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도 좋았다.

이런 야릇한 장면마다 노골적인 대사를 거침없이 해대는 것도 과격하지만 잘 어울리고. 

....물론 픽션 한정이지만, 난 왜 이런 속 시커먼 애들이 좋은 지. 재탕해도 늘 흐뭇한 거 보면 내 취향도 참 안바뀌는 것 같다. 

좋은 걸 어쩌겠냐만. 

 

"전 이우희 대표님을 절대로..."

"탐내." 
이우희가 김수영의 셔츠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위험한 짐승 같은 욕망을 드러내며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자신을 먹잇감으로 보는 란족들을 혐오하는 이우희가 김수영에게 [너도 날 먹고싶으냐]며 으름장을 놓으며 탐내면 목을 비튼다는 둥 할 때는 언제고, 청곤이고 뭐고 널 먹느니 죽지하며 계속 밀어내는 김수영에게 [너 정말 나 안 먹고 싶어?] 라는 식으로 변하며 나를 좀 탐내라며 몰아붙이는 흐름도 즐겁다. 

종국에는 욕심내주는게 기분 좋다면서 너한테는 잡혀주겠다는 둥 할 때는 광대가 멋대로 올라감.

 

[내가 기라면 기어라] 는 식의 개샛키 발언과 행동만 일삼던 이우희가, 홍콩에서 김수영을 빼낸 후부터 점점 변하더니, 멀리가서 에그타르트 사온 것도 웃겼지만 아이스크림은 이거 이미 팔불출 된 거 아니냐? 싶었음.

그렇게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나면 버릴 것처럼 굴더니 수영이 뭘 해도 자꾸 더 써야 할 거 같다는 둥, 아직 내 것인지 확인해야겠다는 둥 하는 소릴 할 때는, 얘도 뭐하면서 큰 건지 좋아죽겠다는 말을 참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내도 내가 내고, 죽여도 내가 죽이고, 뭘해도 내 손을 타야지, 김수영이 남에게 상처 입는 꼴은 못 본다는 이우희. 

김수영이 다칠 때마다 나서지 말라면서 짜증 내고 마지막 사건 이후로는 더 유난스럽게 구는 걸보면, 처음 애 끌고 와서 묶어놓고 개 패듯 패고 총질한 게 누구였더라 싶어서^^;

이렇게 묘하게 다정한 모습 때문에 열번 못 해줘도 한번 잘해주면 흔들린다며 김수영이 서서히 정들다가 홀랑 넘어가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요괴보다 더 요괴 같은 인간에게 제 조카가 넘어가 버리는 걸 본 후, 내내 걱정만 하는 수영의 삼촌이 이우희에게 걔가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 앤 줄 아냐며 따지니까 [착한 건 알겠는데 침대에서 보면 순진한건 모르겠다.] 며 비웃는 부분 역시 자랑도 참 가지가지 저답게 한다 싶었다.

 

다시 보고 백번 봐도, 볼수록 이우희는 다정 공이 맞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  

 

마지막까지 서로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는 말도 없고, 그래서 이우희가 하는 일은 정확하게 뭐람? 하는 의문도 드는 등, 모호한 부분들이 있기는 해도 이런 점들은 그냥 작품의 개성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감상으로는 캐릭터의 매력도 좋고, 감정 흐름이나 상호 작용같은 건 확실히 취향이었는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초중반에 깔린 떡밥이 다 회수된 것 같지는 않다. 

초,중반까지는 이런저런 사건과 김수영의 활약이 두드러지지만, 후반부는 애정 선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서 그런지 이런 배경이 되는 일들이 다소 급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있다. 움직이는 그림이나 백란, 흑란간의 싸움도 극 후반에야 제대로 나왔고, 설체의 등장이나 중간중간 나오던 란 족의 구전 같은 이야기 소재도 시원하지가 않고. 

 

김수영으로 인해 담을 그릇만 사라졌을 뿐 이우희는 여전히 청곤인데다 몇십 년 후엔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고, 어떤 의미로든 그의 곁에서 항상 청곤을 취하게 될 김수영은 계속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는 점도 여운이 남아서.

일련의 사건 마무리가 후반에 급전개 된 감이 있어서 뭔가 더 있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외전도 짧은 편이고. 

이런 점 때문인지 모.순은 설정이나 캐릭터가 아까워서라도 외전이 따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이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아서...
모두가 순조로운 세상의 한 장면이 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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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모두가 순조로울 수는 없지요."
이우희의 말에 김수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듣고보니 그러네요. ...왠지 나만 뺴고 다 순조로운 거 같기도하고."
"김수영 씨는 그 성격 때문에 순조롭기 글렀다는 생각 안 듭니까."

02
"...왜 그 한 번을, 그냥 열한 번을 채우지, 왜 사람 마음을 흔들어서."

김수영이 고개를 숙였다. 열 번을 못해주다 한 번을 잘해주면 그 한 번에 마음이 흔들리는 어리석은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우희가 김수영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흔들렸습니까?"
"..."
"얼마나 흔들렸나요."
"...아주 조금."

이우희가 고개를 숙여 김수영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물었다.

"얼마나, 흔들렸어."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이우희는 김수영의 턱을 쥐어 거세게 입을 맞추어왔다. 허리를 끌어안고 숨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을 만큼, 깊숙이 입술을 겹쳤다.

"얼마나 흔들렸냐고. 김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