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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기 마시기
Written by 유우지 Yuuji
Publication date : 2003.02.16 (초판) / 2005.05.29 (2판) / 2009.07.19 (3판)
Book spec: 1~2권 완결 | 247p / 257p | 신국판
■Character  | 정상헌 (攻), 윤해신 (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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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편력이 강한 아버지를 둔 윤해신은 어린 시절 세번 째 양 어머니가 데려왔던 그녀의 아들 정상헌과 의붓형제가 된다. 하지만 부모의 재혼 생활은 고작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남남으로 돌아간다. 헤어지던 날, 윤해신은 그 동안 자신이 참아왔던 의붓 동생 정상헌의 행동에 대해 강한 독설을 내뱉게 되고, 그에 충격을 받은 정상헌은 윤해신에게 [너와는 같은 공기도 마시고싶지 않다] 는 말로 되돌려주며 둘의 짧은 가족 생활은 끝을 맞는다. 그렇게 십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좋은 친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둘의 부모의 부탁으로, 윤해신은 갓 제대한 정상헌에게 잠시 거처를 제공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불쾌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내키지 않는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꺼냈다가 내리읽은 기념 리뷰. 유우지님의 대표작으로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어가버린 작품이다. 당시에는 신선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클리셰가 된 요소들로 이루어졌지만, 언제 읽어도 촌스러움이나 어색함이 덜한 작품이라는 생각. 읽을 때마다 재밌는 걸 보면.

본편과 스핀오프 및 외전으로 총 4권 구성으로 일단 본편 [같은 공기 마시기] 부터.

 

주인수 윤해신은 책을 좋아하고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지적인 이미지. 예민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은근히 정에 약하다. 참한 겉 모습과 달리 뒤를 사용하여 욕구를 달래는 습관이 있으나 게ㅇ는 아님.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아는 친구 김재영이 도구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주긴 하지만 사실은 동정.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런 행위 또는 요리에 몰입하는 것으로 해소한다. 요리를 특출나게 잘함.

 

주인공 정상헌. 어릴 때는 골목대장 같은 말썽꾸러기 느낌, 학창시절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좀 노는(?)의 이미지로 커다란 덩치의 다소 포악한 성정을 가졌지만, 어머니에게 약하다. 언젠가 토끼 같은 마누라에게 집 한 채는 해주고 싶다며 돈을 모으기 위해 꾸준히 해오는 아르바이트는, 부잣집 사모님들을 상대하며 용돈을 받는 것. 여자들에게는 꽤 다정하게 구는 타입이라 주위에 여자가 많다. 해신이 해주는 음식에 점점 길들며 그와 비례하게 해신에 대한 집착 역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딩공.

 

같은 공기조차 마시기 싫었던 두 사람이 십 여년이 지나 같은 공기 안에서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로, 어릴 적부터 앙금을 쌓으며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사람이 십수 년 만에 재회하고, 여전히 앙숙인 채 투덕거리다가 서서히 마음을 열고 폴인럽 하는 흐름이다. 반강제로 동거를 하게 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윤해신이 정상헌이 제비 알바를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을 어머니께 숨기고 싶어 하는 정상헌에게 반 협박 or 타협으로 꼼짝 못 하게 하는 데 성공하는데, 초반과 달리 이 무렵부터 윤해신이 정상헌을 살살 약 올리며 구슬리는 모습이 어쩐지 귀엽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며 놀리면서도 집밥은 꼭 해 먹이는 부분이나 정상헌이 그런 윤해신의 음식의 늪에서 점점 못 빠져나가는 것도 귀엽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정상헌 역시, 윤해신의 음란한(?) 취미를 알게 되고, 그것을 빌미로 다시 역공하는 분위기인데, 이 때 하나 둘 감정이 녹아있는 대사들과 서로에게 빠져드는 행동들이 풋내나는 느낌이라 좋다. 얘네는 세상 진지하게 싸우는데 나는 광대가 올라가는 그런 거.

 

다투다가도 묘하게 달달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서로가 다른 사람과 있는 것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질투에 휩싸이고. 

자신의 요리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정상헌을 점점 귀엽게 느끼고 그러다 호감을 넘어선 마음을 깨달은 윤해신도 겉으론 까칠해도 속으론 당황할 때마다 꽤 귀여워진다. 

해신의 비밀스런 모습을 본 정상헌은 약간의 오해를 하며 혼란을 느끼고 해신에게 마구잡이로 구는 데, 서투른 공에게서 피어나는 새싹 같은 집착들은 예나 지금이나 취향이다. 물론 정상헌은 애 같은 면이 많긴 하지만.

 

서로 전전긍긍하다 자신들의 꾀에 빠져 몸 맞고 마음 맞는 과정은 뻔하지만 재미있다. 정상헌이 먹은 약은 약효가 미미했더라......하며 사실 혼자 정신 못 차리고 해신에게 들이댄 것이라는 것을 은근슬쩍 던져주는 부분이나, 잔뜩 흥분하고도 무조건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끝까지 하는 주의라며 뻔뻔하게 구는 정상헌과 어이없어하면서도 사랑한다고 곧잘 말하는 윤해신도 웃겼음. 그 후로 매번 이 말을 습관처럼 꼭 하는 것도 귀엽다. 얘네 되게 꽁냥거림.

같은 공기 커플은 왠지 귀엽다. 마음이 통하고도 투닥이는 건 여전하지만.

 

물론 스키장 에피나 외전 등에서 정상헌의 모럴이 좀 부족한 모습들이 나오기 때문에 취향이 갈릴 수있다. 해신에게 하는 걸 보면 좀 봐주게 되는 것도 있지만 내 경우나 그렇지, 이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스테디한 관계에서 공과 수의 모럴은 꽤 중요한 요소이기도하고. 아무튼 주의가 필요함.

 

본편이 살짝 돌려서 표현되는 감정의 흐름이고 해신의 감정에 치우친 편이라서 외전에 정상헌의 시점 이야기는 꽤 좋다. 생각보다 해신이에게 훨씬 더 일찍 반해있던 것도 알 수 있어서 좋았음.

 

야릇한 분위기는 곧잘 나오지만 씬은 담백한 편이다. 작가님이 씬에 야박하신 분은 아닌데 초창기 작품이다보니 꽤 건전한 편이다. 

그래도 책 후반부 외전이나 이후 외전 책들에서 보충이 됨. 본편이라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많이 에로하진 않아도 작가님의 잔잔한 감정선과 가볍고 유쾌한 감성으로 언제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너 같은 놈이랑은 같은 공기도 마시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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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가만히 날 마주보던 녀석은, 갑자기 내 양뺨을 턱 감싸쥐더니, 인상을 찌푸린 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난 그 시선을 그대로 마주보다가, 속삭였다.

"같은 공기 마시고 살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 "그럼, 네 인생도 주는거냐?"

02
서늘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얼굴이, 마치 꽃봉오리가 일시에 터지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이런 표현을 쓸 날이 오리라곤 설마 생각지도 않았지만, 어쨌건 그랬다. 녀석은 웃음기가 잔뜩 담겨있는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니, ―아냐. 잘 다녀와. 조심해서"

연신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우습게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기분이 금세 풀려버렸다. 아아, 제기랄. 이놈 하는 짓마다 왜이리 뻐보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