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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이즈 커밍 (Winter is Coming)
Written by 비원
Publication date : 2016.02.28
Book spec: 1권 완결 | 411p | 국판
■Character  | 이안 해일리 (33세,攻), 기엔 (22세,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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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엔은 한국계 이민 2세대로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 레이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것을 알아본 에프원의 전설적인 선수인 알랭 오드팽은 그를 데리고 자신의 수제자로 키우며 에프원 데뷔를 돕지만, 어린 기엔의 법적 보호자로 나선 가족들과 친척들이 연일 돈 문제를 일으키고 기엔의 유명세를 수시로 이용한다. 은사 오드팽이 타계하게 되면서 에프원으로의 데뷔가 붕 떠버리게 된 기엔. 업계에서 그의 입지는 엄청난 재능은 탐나지만, 뒤에 딸린 골치 아픈 가족 문제들 때문에 쉽사리 계약을 할 수 없는 여우의 신포도와 같은 존재가 된다. 그렇게 현재는 파트타임 테스트 드라이버로 돈을 벌고 가족에게 보내는 일상이 반복 되던 중, 여느 때와 같이 테스트 드라이빙을 마치고 잠시 쉬던 기엔의 뒤에서 틀어진 일정에 대해 전화통화를 하던 장신의 미남자가 기엔에게 드라이버라면 잠시 대리운전을 해줄 수 있겠냐며 아르바이트 제안을 해온다. 그 남자 이안 헤일리는 40분이 넘는 거리를 15분 만에 도착하게 해주는 것에 대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하는데….


이번 2월 비원님의 신작으로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현대 스포츠 물. 포뮬러원(F1)을 주제로 하지만 스포츠를 곁들인 할리킹 물이다.

개인적으로 에프원을 좋아해서 꽤 즐겁게 읽었다. 역시 스포츠 물 전문이신 작가님이셔서 그런지 관련 스포츠 배경에 대한 세밀한 설명들이 많았다. 자동차들의 기종은 알만하지만, 레이스에 관련한 부분들은 다소 생소한 것도 있고.

문체가 살짝 심플해서 문맥이 이어지는 부분들이나 장면전환이 오묘하긴 했는데 읽다 보니 나쁘지는 않았다. 책 컬러가 네이비 핑크 조합인 것이 좋았음.

 

주인수인 기엔은 신동으로 자라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지만, 대외적 여건으로 갈 곳을 잃고 붕 떠버린 비운의 천재이다. 버려도 될 잔정 때문에 제 팔자를 꼰 타입. 

친부의 사망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하나 남은 누나에게 약해서 호구 짓을 하는 나머지 좀 답답한 구석이 있다. 본인 가족과 친척과 얽힌 일에만 멍청하게 굴 뿐 그 밖에는 빠릿하다. 노동과 그 댓가에 대해서는 칼같이 챙기는데다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바뀜. 

천재적인 드라이빙 실력으로 이 계통에서는 암암리 유명세가 높다. 170센티 초반의 키와 F1 드라이버치고는 작고 날씬한 타입.

수가 서킷에서는 베스트 드라이버지만 어린 나이에 서킷에 나와 사실상 무면허라서 일반 도로에서 운전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재밌는 요소인데, 실제 최연소 F1 드라이버가 무면허였다가 만 18세가 되어 일반 운전면허를 취득했다는 뉴스를 최근에 본 기억이 나서 괜히 반가웠음.

 

주인공인 이안 해일리는 세상에 돈이면 다 된다는 다소 뻔한 생각을 하는 뻔한 부자. 금융재벌이자 F1의 후원사인 BIS 회장의 손자로 경영대행을 맡고 있다. 

190센티의 큰 키와 다부진 몸을 가진 잘생긴 외모. 정중한 말투를 쓰지만, 은근히 직설적인 말을 자주 한다. 기업 차원에서 에프 원을 후원하긴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개인적으로 에프 원이나 레이싱에 관심도 없고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다. 다소 편견적인 시각으로 레이싱을 생각하며 투자를 아까워하다 기엔이 운전하는 차에 탄 이후 그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다. 

초반에는 안 그럴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갈수록 기엔에게 엄청난 사랑꾼이 되고 살짝 느슨한 부분도 많다.

 

초반에 둘의 만남이나 무면허인 기엔이 결국 대리운전을 시간 안에 성공시키면서 얽히게 되는 설정이 즐겁다.

여기저기 근근이 지내던 기엔이 얼떨결에 이안의 집에 머물게 되며 메이드인 앤이나 비서인 다니엘 등 이안의 주변 인물들에게부터 애정을 듬뿍 받는 분위기가 꽤 유쾌했음. 

초중반까지는 레이싱 이야기나 기엔의 과거 및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배경 설명들이 좀 늘어지게 나오는 감이 없지 않아서, 둘 사이의 감정선이 잘 안 잡혀서 집중이 잘 안되긴 했다.

그러다 중반 정도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대리운전의 대가치고는 과하게 서포트를 해주는 이안 덕분에 지지부진 끌려다니던 전과 달리 가족과 친척들을 과감히 쳐내고 쌓였던 감정을 쏟아낸 기엔.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냐는 기엔의 질문에 이안이 [불쌍해서] 라고 사심 없이 순수한 동정을 담아 대답하자, 그의 품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펑펑 울고 난 장면 이후, 기엔이 이안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며 무심했던 전과 달리 나이답게 귀엽고 곰살맞게 굴기 시작해면서 꽤 재미있어진다.

이안이 결국 순수한 신뢰로 뭉쳐 반짝거리면서 어택해오는 기엔에게 항복을 선언하며 [사실 나 게이예요]라고 고백한 후, 네 감정과 내 감정은 다르니 더 이상은 다가오지 말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데, 이 부분에서도 살짝 둘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정점을 찍는 부분. 나이 차도 그렇고, 성향도 그렇고 더는 사감으로 얽힐 순 없어서 밀어내는 이안과 고백에 당황하면서도 나 좋다면서 왜 그러냐며 더 들이대는 기엔. 

 

"나 좋아한다며."
기엔이 도망치려는 남자에게 말했다.

"좋아합니다."
이안 해일리가 무심히 고백했다. 기엔과 거리를 두고 선 남자는 좋아하지만 다가오지 말 것을 청하고 있었다.
"뽀뽀 좀 해보면 어때서 그래요."
기엔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툴툴댔다.
"가까이 오지 마."
이안이 무섭게 경고했다.
"내가 자자고 덤비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린 수가 순진하게 굴면서 난 아무것도 몰라요. 식으로 유혹하는 행동들을 해대면 되레 공이 더 당황하는 그런 구도가 또 묘미.

내빼고 도망가는 수보다 들이대는 타입을 좋아해서 그런지, 처음엔 그저 그랬지만 이때부터는 기엔이 꽤 귀여워진다.

거기다 너무 저돌적으로 구는 기엔 때문에 이안은 집에도 늦게 오고 문자로만 연락하는 둥 쩔쩔매며 피해 다니는 것도 은근히 웃기고, 거기에 안달 난 수가 방문 앞에서 졸면서 기다리고 나 좋다면서 왜 그러냐며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장면들이 좋았다.

그렇게 피해 다니던 이안이 호텔 로비에서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보고 외도 행각을 발견한 마누라 마냥 폭주하는 기엔을 공이 그 자리에서 룸으로 들춰 메고 올라가 오해라고 풀어주고 여차여차 몸과 마음을 확인하는 시원한 흐름도 마음에 들었고.

확실히 레이싱 이야기나 다른 부분들은 확실히 지루할 수도 있는데, 주인공수가 같이 붙어있을 때는 오롯하게 둘만의 달큼한 연애 모습만 나오니 이런건 또 장점인 듯.

 

전반적인 이야기는 크게 사건·사고가 있는 건 아니라서 굴곡 없이 흐르는 느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소소한 연애 같다가 갑자기 주인공이 조만장자 미를 뽐내며 한 두 번씩 어마어마한 돈ㅈㄹ을 해주는 흐름이다.

내용의 주요 요소는 기엔의 정체성이다. 

이민자 세대인 기엔의 한국 이름은 류장우이지만 한 두 번 언급된 정도이고, 현재 쓰고 있는 이름인 기엔은 성을 뺀 이름만 쓰고 있는데, 사실 기엔은 피붙이 가족과 자신을 키워준 은사 알랭 오드팽 사이에서 늘 망설였었다. 알랭 오드팽의 양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친족들에게 끌려다니고, 알랭의 죽음으로 더 깊은 아픔을 갖고 있었는데 이안을 만나 마음의 여유를 찾고 가족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진실된 가족애에 대해 결심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는 것.

경기 장면이 적지는 않은데 경기 내용에 긴박감이 없어서 그런지도. 기엔이 이 업계에서 먼치킨 수준으로 너무 능력이 좋아서 위기가 없다. 

그나마 위기가 빈대 같던 친족들 때문이었는데 그마저도 초중반에 깔끔히 잘라내서 더 그런 듯. 오랜 기간 괴롭혀왔다던 것치고는 좀 허무하게 끝나기도 했고. 

 

뭐 그래도 내 기준, 주인공수의 연애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에 이 부분들 빼고는 꽤 즐거웠다.

특히 주인공인 이안이 갑부치고 귀여운 구석이 많았음. 에프 원 전체를 쥐락펴락하면서도 딱히 제 애인 편애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능력에 비해서는 소박하게 도와주는 것도 의외로 좋았달까. 기엔 능력이 너무 좋아서도 그랬겠지만. 그 외에 수의 정식 데뷔 계약을 도와주면서도 살짝 사심 섞어서 연봉도 대리 지급 형식을 해가며 현금은 안주고 [사달라는 건 내가 다 사준다. 내가 너의 지갑이다] 라며 호구 자청하는 것도 귀여웠음.

 

기엔과 제대로 연애를 시작하고나서는 피해 다닐 때와 달리 거침없이 저돌적으로 굴고 절륜함을 드러내며 공다움을 뽐내는 것도 장점.

그러면서도 답지 않게 또 살짝 가족사에 애환이 있는 것도 어찌 보면 클리셰적인 부분이지만, 할리킹의 재벌 공치고는 꽤 소박하고 인간미가 있어 보인 것도 장점이었다. 그리고 역시 개인 취향으로서 정중한 말투를 유지하면서 어쩌다 반말하는 타입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수는 자기 커리어가 확실해서 능력적인 부분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남들에게는 꽤 담백하고 무심하게 굴지만 애교라고 해야 하나. 나이 차이가 무색하지 않게 어린 연인 미를 뽐내며 많이 귀여워지는데, 후반에는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남들에게도 살짝 그 귀여움을 본의 아니게 드러내고 사랑스러움을 풍겨서 대외적으로도 인기도 더 올라가고 주변 인물들이 우쭈쭈~하는 분위기가 되어 공의 질투를 유발하는 것도 좋아하는 요소들이었다. 

 

아무튼, 페라리나 맥라렌은 물론 온갖 미사여구로 나열되는 희귀 차종들의 컬렉션과 수의 첫차를 무려 종류별로 12대나 사주는 주인공의 재력 과시 등, 레이싱과 할리킹의 조합이 적절히 어우러진 작품으로, 할리킹에 관대한 나로서는 가볍게 읽기 좋았다.

 

천재란 건 어떤 기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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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기엔, 이라고 하면 여기선 다 알아요.

02
내 취향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방심했습니다.
...내가 누굴 좋아할 일은 영원히 없을 거리고 했습니다. 누가 나를 좋아하는 걸 바라지 않은 것처럼요.
기엔이 나를 자꾸 그런 눈으로 보니까 욕심이 생겼습니다.
내 착각이 아니라 나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욕심 같은거요.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피해도 이해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