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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Written by 쏘날개
Publication date : 2016.01.23
Book spec: 1~2권 완결 | 314p / 312p | 신국판
■Character  | 차학윤 (36세,攻), 강재희 (=최재희 32세,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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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서 자란 강재희는 18세에 쌍둥이 동생 강재우와 함께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12년의 형을 선고받아 수감된다. 그 후, 가석방으로 10년째에 출소를 하게 되고,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에게 입양된다.

수감 중에 써놓은 소설로 30세에 공모전을 통해 등단하게 된 강재희는 더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작은 디자인 편집 대행사 기획팀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렇게 4년의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가족과 평범한 삶을 보내게 되었지만 여전히 깊은 죄책감에 싸여 평범한 일들에 어려움을 느끼던 그는 어느 날, 업무상으로 만나게 된 방송국 보도국의 기자 차학윤을 인터뷰하게 된다.

첫 대면에서부터 기묘한 느낌을 주던 차학윤은 어느 순간부턴가 강재희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해온다. 그런 차학윤에게 처음으로 감정적인 이끌림을 느낀 강재희는 그의 끝없는 구애 앞에 망설이는데….


2016년 첫 구매 신작 쏘날개님의 작품.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보통 신간을 받아도 좀 묵혀두었다가 보는 편인데, 파본 검사하다가 나도 모르게 다 읽어버렸다.

믿고 보는 작가님이라 광고 뜨자마자 예약하고 발췌나 줄거리는 전혀 모르는 상태로 봤는데, 초중반까지는 그냥 과거 좀 있는 애들의 달달한 연애 리맨물로 보다가 애절한 급전개에 당황했다. 다 읽고 난 뒤의 여운이 정말….


-형벌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해독解讀 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다.

-저는, 안 할 겁니다. 안 합니다.…연애.

화자이자 주인수 강재희. 사회와 격리되어있던 기간이 길어서인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는 못하며, 양부모와 이복동생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등 마음에 여유가 없고 죄의식을 가득 안고 산다.

그래서인지 고지식한 부분도 있고 융통성이 없음. 그런데 게이임.

평생 자신은 행복해지면 안 된다는 죄의식 때문에 짧은 관계만 맺고 연애는 거부하는 타입이라 소문만큼은 남자들 눈물 쏙 빼는 바람둥이지만 무거운 과거에 짓눌린 만큼 처연한 느낌이 강한 캐릭터.

 

-보기보다 더 괜찮은 남잡니다. 나 말입니다.

-누가 잡아먹는답니까? 뭘 그렇게 겁내요? 그냥, 연애 좀 하자는 건데.

주인공인 차학윤. 방송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 유명세를 자랑하는 능력남. 멋진 외모는 옵션.

강재희에게 첫 눈에 반해서 바로 대쉬를 하는 데다 성향에 대해 감추지도 않고 딱히 주위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 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온 탓에 누군가 가족처럼 곁에 있어 주기를 내심 바라는 듯.

냉담하고 딱딱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본인 말대로 낯가림(?)이 있을 뿐, 알고 보면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데다 꼬실 때보다 정식으로 사귀고 나면 더 열렬해지는 타입. 

 

중요한 요소가 너무 스포일러라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한 감상을 적어보자면….

 

연애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끌리는 감정을 멈추지 못한 강재희가 차학윤에게 휩쓸리며 썸타는 과정이 아주 좋았다. 이런 연애 직전의 쫄깃한 분위기와 흐름이 너무 잘 표현되어서 잔뜩 충족되는 기분.

강재희에게 언제 덮칠 것인지 시간 예고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나, 매너있는 듯하면서도 박력 있게 밀어붙이는 차학윤의 모습은 정말 취향이었다.

시사 기자다운 인텔리한 느낌과 다정하지만 능청스럽고. 뭔가 복합적인 매력을 뿜어내며 진짜 저러면 정말 넘어가겠다 싶을 만큼 설레는 대사와 행동들에 선수의 향기가….

초반부 강재희의 집 앞에서 기다리며 커피로 살짝 조련하는 듯 꼬시는 모습도 좋았고. 재희의 이복동생을 외간남자인 줄 알고 불같이 질투하는 성정도 좋았다.

 

"반듯한 모범생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질이 나쁘군."

"누굴 말하는 겁니까?"
나는 지지 않고 반문했다. 그가 눈썹을 삐쭉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우리."

 

서로 지지 않고 기 싸움 하는 것들도 좋은데, 고지식한 강재희를 약 올려놓고 누구한테 하는 소리냐고 따질 때마다 [우리]라고 능청스레 받아치는 차학윤의 센스도 좋았다.

좀 심하게 다투면 차학윤에게 최대한의 욕을 악당, 악마, 악귀 정도로 표현하는 강재희는 묘하게 귀엽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썸타고 연애하게 되는 핑크빛 과정이 가득했던 1권.

 

2권에서는 불같이 뜨거운 연인 사이의 나날들로 점철된 지 수 개월. 그동안 사랑과 질투, 이유도 기억 안 나는 사소한 다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듯한 감정, 화해무드에서의 스킨십 등, 보통 연인 사이의 달콤한 일들을 보여준다.

호언한 것 처럼 사귀고 나서 더한 애정을 퍼주는 학윤과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된 강재희는 덕분에 타인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보이고 글도 다시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재희의 어두운 과거가 일상 속에 침투하고 깊숙이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어긋나 암울한 현실에 치닫는다.

말 그대로 어둠의 다크사이드(;;)…. 양지에서 음지로 흐르는 그 과정들이 애달프다.

 

과거의 진실을 먼저 깨달은 강재희는 차학윤을 향한 되돌릴 수 없는 감정에 괴로워하고 이유를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무작정 그의 곁을 떠난다.

진실을 모르는 차학윤은 그저 재희의 변덕이라 생각하고 여전히 다정함을 두른 채 그냥 자신에게 다 맡기라며 안아준다. 재희에게 차이고 나서도 [너 밤에 비 오는 거 무서워하잖아] 하며 목포에서 달려온 장면에서 울컥….

그렇게 다정한 차학윤이 얼마 안 가 재희의 비밀을 알게 되고 분노와 애증에 휩싸여서 그렇게나 사랑하는 강재희를 할퀴게 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괴로움이 절절하게 느껴져 너무너무 슬펐다.ㅜ.ㅜ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 해오고 꿈꿔온 만큼 변해버릴 수밖에 없는 차학윤도, 평생 죽는 날까지 자신 안의 괴물을 경계하겠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강재희도 모두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읽는 나 역시도 비밀이 밝혀진 후 적나라한 사실관계를 알고나서는 손에 박힌 가시같은 불편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불편함은 자연스러웠다.

 

수를 욕해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못하도록 상쇄되는 장치가 바로, 주인수인 강재희 시점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미 읽는 입장에선 강재희의 감정에 따라 몰입했기 때문에, 둘 다 불쌍하다고 느껴져서 어떻게든 잘 풀리길 바라게 된다. 사실은 정말 이조차도 말이 안 되고 차학윤에게 가혹한 일인데 말이다.

 

동정이었든 감시의 목적이었든,살인자를 거둬 키우시더니 
어느새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안타깝게 여기게 되셨나 봅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드는 독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 차학윤이 강재희의 양부에게 말하는 이 장면을 통해 이게 강재희의 시점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랬을까? 하는 돌직구를 던진다.

누가 기자 아니랄까 봐 차 기자님 말 참 독하게 한다 싶지만 이게 현실인 것을 깨닫게 됨.

 

나처럼 공편애에 가까운 이들은, 겉으로만 냉정하고 거칠 뿐, 내치기는커녕 재희에게 여전히 집착하고 미련이 뚝뚝 흐르는 차학윤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울 것이고,

수 편애에 가깝다면 칼같이 돌아서는 공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모순적인 감정과 수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강재희가 왜 그랬을까 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은 모호하게 페이드 아웃되며, 불친절하게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자세한 설명의 생략으로 끝까지 강재희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계속 안고 있어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뭔가 다른 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여지 역시 남겨준다.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야] 하는 기대를 살짝 저버리는 것이 반전이면서도 매력이다.

있었던 사실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먹먹하다.

 

아무튼, 독자 입장에서도 재희에게 다정한 연인으로서 훈내 넘치던 차학윤의 모습을 먼저 보았고,

속죄만으로 점철된 삶에 이젠 행복해져도 되는 걸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과 학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변하는 강재희를 이미 봐버렸기 때문에.

연인이었던 둘이 얼마나 애틋했는지를 너무 잘 느낀 독자로서 이들 사랑에 내가 미련스러움을 갖게 된다.

 

나도 네 얼굴 보기 싫어. 행여 너하고 다시 시작할 생각도 없고.
그런데 네가,

네가 이렇게 궁상맞게 있을 걸 생각하면 정말, 환장할 것 같아..!

 

그렇게 사랑해주던 연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증오를 불태우며 차갑게 굴어도, 죄의식 때문에 덤덤히 받아들이는 강재희의 절절한 회한에도 울컥하고, 재희를 증오하고 절대 엮이지도 않겠다 하면서도 저렇게 여전히 재희 생각으로 가득한 차학윤의 미련한 애정에 나도 환장할 것 같았음. 미워해야 하는 데 그게 안 되는 마음이 안쓰러워서.

 

역시 개인 취향이지만, 흑화해버린 차학윤이 재희를 거칠게 대하는 것도 은근 좋긴 했다.

서로 더는 이러면 안 된다고 인식하면서도 둘이 한 공간에 있기만 하면 찰떡같이 붙어버리는 그 배덕한 분위기에 취하게 되는데 특히 욕실 씬은 내 머릿속 깊이 새겨진 명장면이었다.

작가님다운 배틀홈오 스타일의 격하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범벅인 것이 아주 취향.

 

차학윤도 말만 거칠지 행동은 뭐... 너 이제 꺼져라 꼴도 보기 싫다. 이래놓고는 맨날 만취해서 재희 집에 문따고 들어오고, 위험한 동생 때문에 갈 곳이 없는 재희에게 죄책감에 시달려보라는 둥 핑계를 대며 제 집에 데려다 놓고, 종국엔 동생마저 잃고 황망함에 빠진 재희가 식음을 전폐한 상태가 되니까 너 따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궁상맞은 꼴이 싫은 거라면서 세끼 밥 다 챙겨 먹이고. 아주 대단한 만렙 츤데레로 재 탄생하셨다.

 

죽음의 문턱에 선 재희를 보며[…그러지 마, 재희야…] 하고 애처롭게 부르짖던 부분에선 정말 눈물이 핑….

다시는 만나기도 싫다더니 어찌 이리 애절한 것이요 차 기자. ㅠ.ㅠ

 

이런 차학윤이기에 부처님도 어려울 것이라는 요소를 감내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

강재희를 다시 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최고 보살+천사공으로 등극했음.

얘 진짜 멋진 남자다. 이 정도면 최애공 리스트에 올려야 할지도. 은근 주인공이 하드캐리한다.

 

차학윤의 입장에서는 정말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재희와의 관계가 완벽하게 회복되기 힘들 것이고, 강재희 역시 평생 차학윤에게 속죄하며 살아가야 할 텐데 이 둘이 어떻게 서로를 품고 갈지 감도 안 잡힌다.

 

반면에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일들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재희에게 뭔가 면책이 될만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고문도 남고.

 

아무튼, 강재희가 차학윤을 위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것으로 새 출발의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 둘에게 있어 그나마 현실적인 형태의 무난한 해피엔딩같고 개인적으로는 차학윤보다 강재희에게 더 없는 엔딩이라고 생각함.

 

작가님이 이런 감정 흐름과 심리묘사를 정말 잘하셔서 병원 옥상에서 마주한 차학윤의 결론에 강재희가 [살았다….] 며 울 때는 진짜 눈물이 고였다. 너희 이제 정말 어쩌냐 하는 마음에. ㅠㅠ

이렇게 함께 있어도 투닥거리며 곰살 맞던 연애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 뻔해서 짠하고.

정말이지 이끌려서도 안 되고 끌릴 수도 없는 데 결국 서로 만나게 된, 말 그대로 중력과도 같은 사랑 이야기다.

 

강재희 친동생과 은밀도의 일 등이 후반 100페이지 남짓 안에 다 들어있을 만큼 간단하게 축약되어 마무리되기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의 필요성도 느끼지만, 현재로썬 이것이 가장 최상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부연 설명으로 늘어지는 것보다 결과만 내놓은 설정으로 오로지 주인공수 둘에게만 초점을 두고 보여준 것이 오히려 좋았다. 동생 이야기 더 나왔으면 개인적으로는 그게 더 지루했을 지도.

 

취향을 탈 수 있는 소재 설정 때문에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재미있었고 애절한 문장을 통한 감정선에 감탄하며 봤다.

후폭풍도 상당해서 그 여파 때문에 달달한 부분을 자꾸 다시 들춰보았음. 자꾸 안타까워서….

행복하게 연애할 때 모습 위주로 재탕을 많이 할 듯.

 

깔끔한 마무리지만 묵직한 감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작가님 다른 작품들이 항상 외전이 나왔던 것을 보면 뒷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 정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둘이 이후에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지면서도 그냥 여기까지 해두고 싶기도 한 작품.

그리고 작가님의 후기는 늘 매력적이다. 

 

그래, 우리는 처음부터 너무 뜨거웠다.
그토록 극열한 것은 기어코 화상을 입기 마련인 것을.
그러나 감히 그것을 피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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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강재희씨가 조금만 착하고 순진했다면 지금쯤 내 집에서 함께 출근을 하는 길일 겁니다."
"못되고 문란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더 꽂히다니 스스로도 어이없고 안타까울 뿐입니다만."

02
그리고 이 남자. 거침없이 무례하고 서슴없이 다정하며, 저돌적인 열의로 맹렬한 너울처럼 내게 밀려와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말하는, 그와 처음 마주섰을 때 부터였다. 흙빛으로 어두운 내 안에 붉은 씨앗이 던져진 것은.

"저한테, 왜.... 잘해주시는 겁니까?"
"좋아하니까요."

03
눈 돌려, 보지 마.
겨우 이딴 식으로밖에 못 괴롭히는 내가 나도 병신 머저리 같아 미칠 지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