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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라인 (The other line)
Written by 레븐하임
Publication date : 2015.08.23
Book spec: 1권 완결 | 323p | 국판
■Character  | 유어진 (攻), 최현성 (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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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성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두문불출하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오랜만에 대학교 동문들과 모임을 갖기로 하고 함께 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떠난다. 그리고 차가 긴 터널을 지나게 되고, 순간 귀가 먹먹한 느낌과 터널의 불빛이 깜박이는데 그 후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고 4명의 핸드폰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깜깜한 밤의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에게 공격을 당하고, 그것을 피해 산 아래의 마을로 도망치지만, 이미 괴물의 소굴인 상태.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도 안가는 상태에서 일행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데….


역시 올 8월 신작으로, 광고와 공개된 연재 분량을 보고 또 홀라당 낚여 예약 구매한 작품.

무려 이 동네에서 은근 보기 힘들다는 호러와 스릴러 장르로 레븐하임 님 소설은 처음 구매해봤는데 괜찮았다.

 

주인수 최현성은 곱상한 외모의 미남으로 무던한 성격이지만 오랜 기간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왔다. 그러다 1년 전에 겪은 사건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지만 위태로운 상태. 그리고 주인공 유어진은 최현성의 대학 후배로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로, 직설적인 언행에 사교성도 부족하지만, 대학 시절의 동아리 모임은 항상 참석해왔다. 그리고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주인공수 모두 고등학교 시절 야구를 했던 과거가 있고, 그 때문에 서로 알게 모르게 얽혀있는 상태. 그리고 최현성의 대학선배와 동기가 나오는데, 동기는 애잔했던 반면 선배는 진짜 분노유발 최고봉이었다.

 

아무튼, 내용 및 배경은 약간 영화 같은 느낌도 든다. 판타지 스릴러 같은 분위기. 개인적으로 영화 미스x같은 분위기로 느껴졌음.

베이스는 갑자기 같은 지역 다른 공간으로 가게 되어 둘만 남게 된 주인공수가 괴기스러운 생명체들과 사투를 벌이는 것인데, 알고 보면 주인수인 최현성의 삶에 대한 고난 극복기 같은 느낌.

이상한 현상에 휘말리기 전부터 이미 최현성의 상태는 정말 누가 겪어도 바닥을 치고 죽지 못해 사는 괴로운 심정이었을 텐데 그런 상태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겪으니 오히려 삶에 더 악착같아 진다 하는, 묘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하고 싶은 삶에 한 줄기 빛처럼 욕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주인공인 유어진. 어딘가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고 개연성도 탄탄하다.

 

"...드디어 우는 거 봐서 시원하냐."
"별로. 예전에 한 번 봤으니까."

"뭐? 내가 다 커서 남들 앞에서 울었다고? 그랬을 리가 없는데?"
"고등학생 때 대통령배 결승에서요. 7이닝까지 던지고 내려올 때, 울었잖아요."

(..중략)

"근데 좀 대단하다. 넌 그런 걸 다 보고 기억하고 있냐? 무려 고딩 땐데"
"그러게요." 나직한 목소리였다.

"그런 걸 다 보고, 기억하고 있었죠."

 

특히 학창시절 야구 얘기가 중간중간 섞여 나오는데, 처음에는 약간 뜬금없게 보여도 사실은 마지막까지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 은근히 좋은 부분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만 보자면 화자인 주인수가 일단 저런 상황에서 민폐 느낌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보통 이런 극한 배경인 장르에서는 수가 좀 약하거나 해서 민폐로 흐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끔 아슬아슬할 때도 있었지만, 꽤 강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상당히 강하고 멋있다. 누가 겪어도 무서운 상황에서 본인이 다치고 위험해져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최현성을 어떻게든 챙기며, 그의 멘탈을 잡아준다. 성격대로 최현성에게 자신의 감정을 돌직구로 날리지만, 질척이지도 않고 적당히 냉랭하면서도 행동은 믿음직스러운 타입. 감정에 대해 강압적으로 강요하지도 않고, 그럼에도 어딘가 묘하게 사람을 흔들리게 하는 매력이 보인다. 그래서 최현성도 오래전 어둠 속에 묶어놨던 감정을 점점 꺼내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유어진이 최현성을 선배라고 존칭 쓰다가도 가끔 이름 불러가며 반말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게 또 심쿵 포인트.

어둡고 무서운 이런 세계관 속에서 둘 사이의 감정 흐름을 알듯 말듯 진전되는 분위기로 풀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또 주인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초반에는 어딘가 존재감이 약해 보이던 주인공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확실히 탄탄해지는 존재감으로 나오는 흐름도 좋았다.

그리고 배경이 된 같은 지역 다른 공간인 이(異) 세계의 형태나 괴물들 묘사도 꽤 신선하니 괜찮았다. 상상하면 약간 징그러운 느낌이 있을 수도. 호러보다는 판타지 스릴러 느낌이 더 강했음.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초반부터 선배와 관련된 일이라던가 사건들이 몰아쳐서 처음부터 복선이 너무 많이 깔린 나머지 후반부의 내용 예상이 너무 쉬웠다는 것. 거기다. 또 후반에 등장한 소년은 대사나 행동이 이중인격이나 싸. 패 같은 분위기여서 뭔가 더 터질까 했지만 푸시식~ 꺼진 느낌이었다는 것. 혹시나 반전이 있을까 했지만, 반전이 없다는 게 반전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연애라인과 에로도인데, 내 기준으로는 많이 약했다.

일단 본편은 완전 사건 위주인 데다가 일이 끝난 후, 외전에서야 제대로 만리장성을 쌓는데, 그마저도 한 번은 아침 짹인줄알고 분노할 뻔하던 찰나에 재시동을 걸고 나와서 가라앉혔다. 학원 물도 아니고 아침짹을 할 바엔 아예 없는 게 낫다는 편이라 다 된 밥에 재 뿌려질 뻔. 

그나마도 성에 안 찼지만, 주인공이 또 매력적이었기에 넘어갈 수 있었음.

사건 위주이지만 감정선이 확실히 그려져서 좋았는데 에로도가 약하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군더더기가 없고, 300페이지가량의 단권임에도 불구하고 늘어짐이나 조급함 없이 기승전결이 깔끔해서 정말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터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터널로 마무리되는 것 같은 요소들처럼 어딘가 영화 장면 같은 부분들도 느껴져 좋았다. 삶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진중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작품.

 

이 곡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고민한다.
이것을 감히 삶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나는 모른다. 선은, 이제 막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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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말했잖아. 조금 유하게 대한다고 해서 금세 풀어져서 맘 놓고 그러지 말라고. 왜. 억울해? 겨우 몇 개월 먼저 태어났을 뿐인데. 그럴 거면 눈에 띄지 말았어야지.

02
"만약 그럴 일이 생기게 되면."
밤하늘보다 더 까만 것 같은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입이 아니라, 그 눈이 말했다.

"선배 혼자 살라고 보내지 않을게요. 그게 선배를 괴롭게 한다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요."

쿵쾅.쿵쾅.쿵쾅.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